역사에 가정은 없다. 논현동 사는 박철수씨가 만약 10년 전 수능 당일날 배탈이 안 났더라면 지금쯤 대기업에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철수씨가 수능을 잘 봤다는 가정을 세우고 그에 따라 오른 연봉을 토대로 재무설계를 새로 한다고 해서 박철수씨가 당장 잘 살 수 있는가? 일어날 수 없는 가정에 따라 평행세계를 탐구해 보는 것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학문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각설, 설문은 하필이면 왜 소현세자를 꼽았을까? 계속되는 병란으로 조선 전토가 초토화된 시대적 위기, 한 나라의 세자로 청나라의 볼모로까지 끌려가야 했던 개인적 위기 속에 소현세자는 좌절하거나 순응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했던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이런 소현세자가 9년의 볼모 생활 중 서구 문물은 접하게 된 것이야말로 소현세자 개인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조선이라는 구석의 작은 나라가 '근대화의 영웅'을 맞이할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 때는 마침 일본이 서구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고 하니,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했더라면 우리 나라가 한반도에 쪼그려 있지 않을 거라며 일단 한탄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 만약에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최소한 일본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국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고 나중에 국력으로도 이기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뿌리깊은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이처럼 즐거운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개인의 열등감을 해소하는 일이 학문 연구의 목적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설문의 의도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인조를 조선의 왕 중에서도 제일가는 열등감과 질투심 덩어리, 권력욕의 화신으로 기억한다. 소현세자가 독살되었으리라는 야사의 의심도 이런 인조의 이미지에 기반한다. 소현세자의 비운의 영웅 이미지는 이런 대비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조선은 지도자의 의중이 바로 한 나라의 정치 노선이 되는 절대 왕조였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도자가 자신의 무능을 대범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린 마인드를 갖추었더라면 조선의 미래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바로 설문이 원하는 답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