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가 뒤뚱뒤뚱 앞으로 나아가는 거북이의 뒤를 쫓는다. 아킬레스가 열심히 달려 처음 거북이가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하지만, 이미 거북이는 그동안 앞으로 약간 전진해 있다. 다시 아킬레스가 열심히 달려 거북이의 두 번째 지점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시 거북이는 그동안 앞으로 조금 나아가 있다. 이런 식으로 달리기가 계속되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제논의 역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역설이다.

어머니가 서울 법대를 들어갈 것을 종용해, 전국에서 4천 등에 들 정도로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도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한 아이가 결국 어머니를 살해하고는 무려 여덟 달 동안이나 집 안에 방치한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접하고 분노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도대체 왜 이 가족은 이토록 불행한 결말을 맞아야만 했을까. 나는 그 원인이 실패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심어 넣는 건 바로 과도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이제 '서울법대'는 더 이상 진리를 배우는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은 자들의 왕좌에 불과하다.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 전교 1등이 하루에 열 시간을 공부하면 너는 하루에 열 한시간을 공부해라. 그 녀석이 열 두 시간을 공부하거든, 너는 열 세시간을 해라. 그 녀석이 모의고사 399점을 맞거들랑, 너는 400점을 맞아라. 그러면 너는 이긴다. '조금만 더 하면 절대로 따라잡힐 리 없다. 왜 그걸 못하냐?', 이게 바로 우리 시대의 제논의 역설이다. 무작정 투입의 양만 늘이면 경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아니 적어도 질 일은 없다는 막무가내식 논리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제논의 초상이다.

(일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