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 덜 구웠어요?"

날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딜가나 큰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지금 한창인 이 실랑이는 조금 특이했다. 여느 대형마트에서든 볼 수 있는 육류코너의 한 시식코너에서 젊은 남자와 여자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직 익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젊은 여자는 앞치마에 유니폼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직원인 듯하고, 남자는 표정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손님이었다. 익지 않은 고기를 내놓을 수는 없을 테니 남자의 성화가 정당한 것으로 보이긴 어려웠으나, 여자의 태도에는 그런 사정도 뛰어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까지마저 느껴졌다.

다행히도 남자는 여자의 그러한 태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불판 위에서 점점 갈색으로 변해 가는 빨간 살점에만 목적이 있다는 듯 여자 쪽은 별로 바라보지도 않은 채 두 개의 이쑤시개를 포크처럼 겹쳐 쥐고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져주랴, 고기를 구우랴, 지나가는 고객에게 호객 행위를 하랴 무척이나 분주했다.

"다 익었네요. 안 보이세요? 빨리 자르기나 하세요."

남자의 재촉이다. 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옆에 놓인 소금병을 보란 듯이 탁탁 털어 고기에 뿌렸다.

"소금을 뭐 그리 많이 쳐요. 짜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확실히 이 말은 효과가 좋았다.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랑을 느꼈다거나 하는 류의 긍정적인 시선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 익은 고기가 한점 한점 잘라지고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 분명 조금 머뭇거렸다.- 자른 고기를 시식대의 한 켠에 놓인 접시로 옮겨 담았다. 남자의 이쑤시개가 금세 고깃점에 와서 박힌 것은 굳이 어려운 추측이 아니어도 알 만한 일이었다.

'아저씨. 다 드셨으면 얼른 가세요.'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는 고깃점들이 다른 고객의 입 안은 구경조차 못한 채, 아까부터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던 사바나의 왕처럼 기세등등한 남자의 입으로 오열종대를 갖추어 들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

남자가 시식 코너에 출근을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정확히 출근 일주일이 된 날 여자는 담당 대리에게 보고를 했다.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사람도 손님이니 내쫓을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 사람더러 시식코너를 독점하지 말란 말을 직접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되묻는 대리에게 여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니가 알아서 할 일을 무엇하러 보고까지 해서 성가시게 하냐'는 뜻이다. 알고도 보고를 한 것은 그것이 자주 있는 일임에도 늘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을 훌쩍 넘어 한 달이 가까워지자 여자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 그 친구, 파란색 야상에 추리닝 입고 다니는?"

스파게티 시식을 맡고 있는 언니는 그 남자에 대해 말을 꺼내자마자 누군지 단번에 알아채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 사람, 스파게티로 한 한 달인가를 배를 채우더라고. 개근상 줄 뻔 헀다니까? 나중에는 정이 들어서 소주잔이 아니라 큰 종이컵에 꽉꽉 눌러담아 줬더니만"

그 말에 다른 언니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여자의 질문에 언니는 고개를 한번 으쓱하더니 "낸들 알아?"하며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넌지시 알렸을 뿐이었다. 이 해와 저 해를 넘나들며 정다운 인생사 이야기를 나누느라 별것 아닌 시식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3.

"고기 바싹 익혀야죠. 돼지고기는 날것으로 못 먹는 거 아시잖아요."

28일째 되던 날, 남자의 잔소리가 또 다시 여자의 고막을 관통했다. 여자의 표정이 가관이다. 억지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는 여전히 이쑤시개를 양 손에 나눠 들고 금세라도 익은 고기를 공격할 태세다. 손님들도 주변에 한두 명씩 기다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프로 시식꾼이 옆에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기자로 살아가는 슈퍼맨처럼, 그 역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함이 빛을 발하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다 익었으면 빨리 자르기나 하시죠. 다른 분들 기다리시겠네."

여자는 이상한 기대감에 이 모든 잔소리를 참아내고 있었다. 28일째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제 인터넷에서 찾아서 조그맣게 출력한 개근상 상장을 부적처럼 지갑에 넣어놓고 있었다. '개근상 줄 뻔 했다니까?'라던 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울렸다.

그녀의 손을 떠난 고깃점들이 다른 손님들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입속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손님들이 불쾌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입으로 꺼내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4.

31일째가 되자, 그녀는 출근길이 다른 날보다 가벼움을 느꼈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먼저 출근해서 준비를 마쳤다.

'과연 그 남자가 또 올까?'

안 올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대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결과는 일주일 뒤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