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놀랐던 것은 나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뿐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마침 그 때 카톡을 열고 프로필 사진을 몽블랑의 만년필의 스타워커 어반 스피드 사진으로 바꾸고 있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전부 '만년필이 무척 갖고 싶은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될 터였다. 그 와중에 그들이 연락을 해오다니, 나로서는 놀라 나자빠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능력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문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놀란 까닭이기도 하고. 어릴 때, 기가 막히게 백텀블링을 잘했다던가, 남들보다 숫자를 먼저 깨쳐서 엄마를 놀라게 했다거나 하는 능력이었다면 아마 놀라지 않았겠지만, 그런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영역의 능력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처럼 내성적인 성격의 왕따 소년이 갑자기 거미에 물려서 슈퍼히어로가 되는 그런 경천동지할 능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상당히 평범한 학생이었고, 친구도 제법 많았으며, 변성기도 제 때 찾아왔고, 중2 때부터 시작한 사춘기는 고3때까지 두 명의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었으며, 제 때 공부를 하지 못해 고3 막바지에 열을 낸 수험생 생활은 가까스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뿐이다. 그 사이에 하다못해 거미줄은 아니어도 5미터만이라도 날아갈 초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아둥바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톡 메세지는 달랑 한 개뿐이었는데 끝에 '..'이 찍혀 있는 바람에 내용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었으면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 메세지를 읽은 것을 그들이 알 것이리라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꾸를 할 생각은 없었다. 간첩 접선 메세지를 위장한 보이스피싱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

   스타워커 어반 스피드 만년필 끝에는 루테늄 합금으로 된 펜촉이 달려 있다. 그게 뭐가 중요하느냐고? 루테늄의 원소 번호가 44번이기 때문이다. 44번이 중요한 이유는 그게 44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꿈에서 숫자가 보인 것은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폐렴이었는지 신종플루였는지, 아니면 다른 병이었는지, 아무튼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를 망쳤을 때 무렵이었으니까 한 5년 되었나 보다. 한참 아프고 난 뒤 독한 약에 취해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숫자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숫자가 1번이었던가 그랬다.

   꿈에 숫자가 나타나는 건 드문 일이지만 숫자가 단 한 개 뿐이었길래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숫자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꿈은 부정확하고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1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1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다만 잠에서 깨고 난 뒤에 1이라는 이미지가 머리속을 둥둥 떠다니기는 했다.

   "뭔놈의 로또를 또 샀대요?"

   토요일 아침,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아침 댓바람부터 볼멘소리를 하는 걸 보니 지난 밤에 로또 용지를 지갑에 넣고 들어오셨다가 걸린 모양이다. 제법 취한 목소리더니 간수하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아 거 좀 살 수도 있지 되게 그러네. 한 장 샀어. 한 장 샀다고."

   "한 장? 한 장 말 잘했소. 종이짝 한 장에 오천 원씩이나 하는 걸 술김에 산 게 참 자랑이우 자랑이야. 지난 번에 안한다고 했소 안했소?"

   "미안하니까 고만 좀 해. 이거까지만 맞춰 보고 더 이상 안 맞춰볼 거니까."

   그 날, 로또를 맞춰 보면서 보너스볼 번호가 1번이었다는 건 따로 덧붙이지 않는다. 나는 그걸 우연이라고만 생각했고, 아니, 아예 그 두 개의 번호가 같다는 걸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적어도 그 다음 주의 방송을 보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내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꿈에서 다음 로또 보너스볼 번호를 맞추는 능력.

   이 얼마나 위대하고도 하찮은 능력인가 말이다.

   로또 보너스볼로 인터넷 검색하면, '숫자 2개하고 보너스볼을 맞췄는데 5천 원 받으러 갈 수 있어요?'라는 글이 올라와 있고 그 글에 대한 베스트 댓글은 '이분 최소 오늘 로또 처음 사신 분'이라는 비아냥이다. 로또 보너스볼 따위를 맞춰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카톡을 받은 지 사흘이 넘어가고 있다. 답장은 여전히 하지 않았다. 그 쪽에서도 별다른 메세지를 보내지는 않고 있다.

   TV에서는 로또 추첨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로또 방송을 보기 싫어해서 이맘때는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가고 만다. 아버지는 눈치를 챈 건지 못 챈 척을 하는 건지 아무 생각없이 손에 쥔 로또 용지와 방송을 연신 번갈아 보며 행운을 기다리는 중이다. 힐끗 종이를 보니 44번이 적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2등에선 멀어지셨어요.'

   뭐 항상 그 능력이 내게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이러다가 틀릴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우연의 일치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나 스스로도 별달리 그 능력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써먹을 데가 있어야 아쉬운 마음도 들 게 아닌가.

   "오늘의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3, 9, 19, 20, 34, 43입니다."

  이미 첫 번째 숫자부터 아버지의 인상이 구겨졌으니 더는 볼 것이 없다. 1등도 아니고 2등도 아니면 인생대박은 이미 물 건너 간 일이 아닌가 말이다.

   "보너스번호는 44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카톡 프로필의 만년필 사진은 지워야겠다.

   나는 그 사진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