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은 유치하기 쉽다. 현실을 다룰 때보다 더욱 예민해야 한다. 환상을 이야기하는 성공한 작가들의 이름값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끔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의심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모모>를 읽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였다. 너무나 유명했으니까.(얼마나 유명한지는 맨 아래의 신문광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모>는 유치하지는 않다. 동화적인 상상력이 선을 넘지 않으면서 현실을 툭툭 건드리곤 한다. <모모>의 입장에서 내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모모>는 재미있다.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힐링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환상 속에서나 답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그러했으니까.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 나도 <모모>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물론 그것이 핑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은 어렵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정말 시간이 없는 것이 맞는가. 시간이 없다는 것은 일종의 나의 모자람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과감히 패스하도록 하겠다.

모모는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제가 기억하기론 저는 언제나 있었던 것 같아요." (16쪽)

...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23쪽)

감동적인 모모의 일갈 <사이비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