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서점에서 헌책방에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나를 잊어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의 도시에서도 청계천에서도 노량진에서도 그러했다. 이틀을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조치원으로,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그리고 한 숨 자고 영동을 건너 구미로, 구미에서 대구까지 갔는데 그 마지막도 중앙로에 있는 서점이었다. 서점에 도착하니 비로소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것도 고백해야겠다. 계속 쓰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몇 년을 참다 보니 65킬로그램이던 내 배가 십 킬로그램이 늘어났다. 책 한 권이 500그램이라고 하면 이십 권의 전집이다. 난 작가라는 걸 꿈이라고 생각하기 훨씬 예전부터 이미 이십 권의 전집을 뱃속에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연수의 말을 빌리자면 '불현듯 내 전생이 살짝 엿보였다.' 난 전생에 말은 엄청 많지만 작품은 별 볼일이 없는 무명 작가였다. 업으로 치자면 스무 권은 써야 하는데 말이 많다보니 글로 쓰질 못했다. 그런 까닭에 염라대왕이 그 책을 지고 현생에 태어나라 했던 것이다. 그걸 지고 외국의 도시를, 청계천을, 노량진을, 대구를 그렇게 돌아다녔으니 자못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