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대해 다룰 때는 김훈처럼 건조한 문체가 좋다. 그가 성행위나 생리 현상을 묘사할 때의 담담한 글의 각도는 비릿함과 뜨거움을 좀 더 강하게 느끼게 해 준다. <흑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장 4시간에 걸쳐 읽었다. 피곤에 몰려서 읽느라 묘사를 놓친 것이 많았다. 한장 띄엄띄엄 읽자니 내러티브는 자연히 머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기억나는 것이 없다. 어차피 내게 책을 읽는 행위는 빈 시간을 이리 씹고 돌려 씹는 그 담담함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내용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요즘 세간 식으로 평을 하자면, 김훈은 점점 자기복제의 장인이 되어 가는 것 같고, 주인공은 돌려쓰기하는 것 같다.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같다. 주인공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고고한 방관자. 고전적인 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