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을 써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잖아요. 이젠 좀 쓸 때도 되시지 않았나 싶은데요."

  수화기를 통해서 담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껏 낮춘 목소리가 아무래도 여러 차례 참아온 불만을 털어놓는 낌새다.

  "그건 저도 몇 번이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재미있다고 보낸 글..."

  "그럼 선생님이 재미있는 글이 재미있는 글이 아니라고 했던 것도 기억하시겠군요.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시다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급하게 잘라 들어온다. 이 친구는 변명을 상당히 싫어하는 친구다. 이쯤해서 장단을 맞추어 줄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만' 재미있는 글이라고 말하셨었죠."

  "잘 아시네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실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쯤해서 겸연쩍게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일랑 마시죠. 전 대비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서둘러 준비했던 너털웃음을 꿀꺽 삼키고 좀 더 대화를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푹신한 쿠션에 기대었던 등을 반쯤 일으켜 세운다. 이 푹신한 쿠션은 아내가 사 준 일본 애니메이션 '토토로' 캐릭터가 그려진 것이다. 한쪽 눈 부분에 국물을 흘려 색깔이 변해 있기는 하지만 쿠션으로서의 기능은 그대로다. 아내가 본다면 기겁을 하겠지만, 나는 도대체 이 쿠션을 어떻게 세탁을 할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선생님, 침묵도 소용 없답니다."

  담당은 쿠션 생각으로 잠시 멀어졌던 나의 의식을 붙들어매는 뾰족한 목소리로 일침을 가했다. (일침을 가했다는 표현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야말로 바느질 한 땀으로 두 사람 사이의 멀어진 의식을 기운단 이야기 아닌가.)

  "삼 주 전에 '달빛 구루마'는 반응이 꽤 좋았어요. 그런 쪽으로 좀 더 신비로우면서도 독자들의 감성을 1차적으로 건드리는 직선적인 글을 써 주길 바랍니다. 독자들의 수준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마세요. 글을 대하는 태도에서 모두가 선생님 같지는 않답니다."

  '달빛 구루마'는 달빛을 거래하는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은행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시골 분교에서 영화 상영회를 할 때 조명이 갑자기 꺼지자 우여곡절 끝에 고객들의 달빛을 전부 인출해서 성황리에 상영회를 마치게 해 주었다는 신파극 같은 동화 이야기였다.

  "게다가 선생님답지 않게 그때는 해피엔딩까지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었답니다. 아무튼..."

  담당은 말을 계속 할 모양이다. 사실 그가 원하는 글이라는 것이 뻔하디 뻔한 것이어서 나는 지금까지 들어준 것만 해도 인내심을 많이 발휘한 셈이었는데도 아직 성이 덜 찼나보다. 이러다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SNS를 안하시는 이유'를 끄집어내서 소통과 협업의 트렌드까지 끌고 나오면서 진절머리나는 설교로 이어질 것 같다.

  "재미있는 글을 쓸게요. 물론 내가 아닌 독자들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글 말이지요. 드라마보다 막장이고, 예능프로그램보다 자극적이고, 유재석보다 더 너그러운 글, 그래 쓸게요."

  언제는 백기를 안 들었냐만은 오늘도 백기를 들지 않고서는 전화를 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말은 안 하지만 흡족한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받았다.

  "네, 말씀 잘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번 주도 마감은 꼭 제대로 지켜 주시구요. 제가 일부러 선생님 괴롭히려고 전화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죠."

  '다 선생님 다 잘되라고 하시는 말이에요.'가 나올 순서인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말끝을 나꿔챘다.

  "저도 다 알아요. 저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인줄... 요즘 독자들이 보통 독자들이 아니잖아요. 저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주세요."

  "모를 리가요. 선생님. 모르지 않아요. 다 알고 있어요."

   "그걸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금요일 마감을 지키려면 슬슬 다시 키보드를 잡아야겠습니다. 담당 선생님도 퇴근하실 시간이시네요. 얼른 일 끝내고 들어가 보셔야죠."

   "퇴근, 참 팔자 좋은 말씀 하시네요." 하고 그녀는 살짝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말씀은 감사합니다. 마감은 꼭 부탁드려요. 금요일 오전 12시까지. 글 완료가 아니라 전송 완료까지."

   나는 왼손에 든 집전화의 종료 버튼을 누른다. 전화기 꺼지는 소리가 두 대에서 연이어 울린다. 나는 다시 쿠션에 기댄다. 전화기의 시간은 5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 버리고 집전화는 제자리에 갖다 둔다.

   이 정도 했으면 동기 부여는 충분하다. 이제 재미있는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마감은 금요일 열 두시까지. 꼭 오전 열 두시까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그것이 나와의 약속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