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가 밤을 찢으며 달려든다. 동시에 잠시 찾아온 선잠까지 멀리 밀어가버렸다. 괜찮다. 아직 배터리는 많이 있고 쓸거리도 남아있다.

바닷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안의 글을 들어보기로  한다. 밀려온 것들이 그대로 썰물에 끌려가지 않도록 갈무리할 준비를 한다. 기록은 조난자의 미덕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잘 발견할 수 있도록 파도소리보다 나은 단어들을 구해야 한다.

수풀 속에서 그르렁거리는 맹수의 코 고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찾아낸다. 바람이 터벅터벅 다가와 주변의 많은 것들과 부딪히며 지나간다. 소리가 의식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을 들으며 깨어있다. 소리의 회합에서 속기사가 된 기분으로 다음 소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다.

바람이 거세진다.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어느새 소리가 물샐틈없이 에워싼다. 옴쭉도 않는 각성의 딱딱한 가장자리에 웅웅거리고 탁탁대고 쏴아하는 이야기를 길게 적어내린다. 옮기는 동안에도 소리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되도록이면 주의를 빠뜨리지 않게 노력한다. 바람이 길어지고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진다. 바다와 풀벌레의 수많은 갈래들을 뒤적인다. 그것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지금 깨어있는 나밖에는 없다. 그것은 완성되지 않음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두에게 알려져야 할 것이었다.

바다가 뒤척이는 소리로 바뀌고, 바람소리가 잦아든다. 멀리서 빛결이 다가와 소리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반짝인다. 잊었던 잠이 깨어날 무렵이다. 밤을 갈라대던 파도소리는 평온한 아침 공기에게 자리를 내준다. 이제 발목까지 다가온 파도의 모습을 본다. 수평선 가까이 마침표가 구조 신호처럼 깜빡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