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돌세가의 앞 두 글자인 죽돌(竹乭)은 주막(대화방)에서 늘 만나는 인물들이 모임 결성의 주축이 되었으므로, '즉석만남에 빠져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비속어 '죽돌이'로 서로를 부르게 되었다.
* 그림 주: 위의 현판은 죽돌세가 성립 당시 부족한 실력으로 자작했던 현판이다. 사용된 연도(618년)은 조선의 개국기년 연도로서 2009년에 해당한다.
세가(世家)는 기전체의 사서에서 제후,왕 또는 그 일족에 대한 기록을 일컫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세력이 큰 가문을 뜻하는 일반명사로도 쓰인다. 사이버조선왕조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많이 쓰이며, 문중 모임을 명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관용어구이기도 하다.
대화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죽돌'과 '세가'라는 두 단어를 결합해서 죽돌세가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것은 비속어의 장난스러움과 관용어구의 끈끈한 어감이 더하여 정체성을 이루는 언어의 형성 과정에 다름아니다.
처음 죽돌세가가 성립할 때, 지은이가 가문의 소개를 작성하면서 '대나무처럼 꿋꿋하고 바위처럼 단단하라는 가훈을 의미'한다고 천명하였는데, 이는 대표적인 '꿈보다 해몽' 케이스로 실은 '죽돌이'를 한자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나무 죽(竹) 자와 한글 '돌'의 가차자인 돌(乭) 자의 의미를 갖다 붙여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아니한다.
처음에는 큰 의미가 있지 아니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로 모두가 대나무처럼 꿋꿋하고 바위처럼 변하지 않는 기상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이를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짧게나마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