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문제가 학교를 넘어 온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왕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이처럼 떠들썩한 것은 아이들의 외로운 죽음이 연이어 매스컴을 탄 덕분이다. 사안이 작을 때에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며 입에 발린 말만 일삼다가, 이처럼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후처방을 반복하는 것이 이른바 주류 언론들의 폐습(弊習)이다.

사후처방이라도 성실히 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원인 파악조차 부실하기가 일쑤다. 민족의 정론지라 자부하는 ㅈ일보가 학교 폭력의 원인을 찾았다며 신문 1면에 실어 놓은 내용을 보면 헛웃음부터 나온다. 학교 폭력이 단 하나의 원인에서 출발했으리라는 순진한 발상에서 출발해 특정 웹툰의 단독 책임으로 몰아가는 작태(作態)도 우습거니와, 그것을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대문짝만하게 실어 놓는 당당함도 눈 뜨고 봐 주기 어려운 수준이다.

먼저 폭력 웹툰이 학교 폭력을 부추긴다는 ㅈ일보의 주장은 검증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폭력 웹툰과 학교 폭력의 상관 관계를 입증하려면, 웹툰이 없던 시절의 학교 폭력과 현재의 학교 폭력의 통계적 차이를 밝혀내야 했을 것이다. 만화의 내용만 갖고 폭력 조장을 운운하는 추정을 사실로 단정하는 함량 미달의 논리부터 기본이 안 되어 있다. 기사 작성자의 자질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애먼 목표물을 설정해서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훤히 드러나는 저의(底意)에 이르면 아연한 마음이 더해진다. 마치 일진이 조금 모자란 아이를 아무 이유 없이 왕따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웹툰이 폭력을 부추긴다'는 기사로 오히려 웹툰을 향한 대중의 무분별한 폭력을 부추기는 아이러니(irony)가 공교롭다. 정말로 ㅈ일보는 큰 폭력으로 작은 폭력을 억누르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 믿는 것일까?

이는 비단 ㅈ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까라면 까"라는 식의 일상화된 폭력에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군대에서 자식, 학생, 하급자의 희생을 미담 쯤으로 합리화하는 한국 사회의 구습(舊習)이 일진과 왕따 사이의 폭력조차 유쾌한 것처럼 묘사하는 빌미를 주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일상화된 폭력을 우리 스스로 깨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학교 폭력이 없어질 리가 없다. 더구나 학교 폭력을 없애 주겠다면서 그보다 더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예리한 분석과 통절(痛切)한 결단이라는 미칭으로 포장하여 대단한 것마냥 1면에다 선전해 대는 신문 따위가 민족의 정론지라 참칭(僭稱)하는 것부터 먼저 막지 않는 이상,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길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