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약간 두근두근하기는 했지만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밤을 보낸 것 같다. 나는 큰일을 앞두고 지나치게 가슴졸이는 일이 잦은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뒤로 잠을 푹 자 둬야 다음 날 머리 회전이 잘 된다는 것이 지론이 되었다. 그러나 한참 뒤에 훈련소 입소 전날에는 '지론'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지론'이란 것이 내게 도움을 준 것은 수능 전날이 유일했다.

방금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수능시험장 안내문이 지하철 역사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런 사소한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안내 문구부터 글꼴까지 그대로인 모습을 보다 보니, 잠깐이었지만 내가 내일 시험을 보러 가기라도 하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라면 분명 나는 사양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두근거림은 행운의 징조처럼 반가웠다. 수험생들이 수 년 전의 나처럼 모두들 단잠을 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