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도 그렇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다. 쉬는 날도 외출하는 것보다 방해받지 않고 컴퓨터나 하고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혼자놀기의 달인인 셈이다. 컴퓨터 하나만 갖고도 이것저것 하는 것이 많다. 그런데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블로그도 벌써 여러 번 만들었다 지웠다 했다. 그 놈의 은둔 증후군 때문이다. 블로그를 계속 하다 보면 마치 퍼츨을 짜맞추는 것처럼 내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누군가를 때리고 싶다거나 공포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예방 차원에서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우울증 테스트라는 것을 시도해 봤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우울증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니깟 게 뭘 안다고' 이러고 웃어 넘기긴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켕겼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은둔을 좋아할 뿐이라고 해두자. 날카로운 것은 자꾸 나를 열어보려고 하는 사람들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아니면 내가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정확히 5일 35~40시간을 공부하면서 2,500문제 가량을 풀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그 정도면 날카로워질만 하지 않을까?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약간 두근두근하기는 했지만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밤을 보낸 것 같다. 나는 큰일을 앞두고 지나치게 가슴졸이는 일이 잦은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뒤로 잠을 푹 자 둬야 다음 날 머리 회전이 잘 된다는 것이 지론이 되었다. 그러나 한참 뒤에 훈련소 입소 전날에는 '지론'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지론'이란 것이 내게 도움을 준 것은 수능 전날이 유일했다.

방금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수능시험장 안내문이 지하철 역사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런 사소한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안내 문구부터 글꼴까지 그대로인 모습을 보다 보니, 잠깐이었지만 내가 내일 시험을 보러 가기라도 하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라면 분명 나는 사양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두근거림은 행운의 징조처럼 반가웠다. 수험생들이 수 년 전의 나처럼 모두들 단잠을 잤으면 좋겠다.
필 충만하게 그냥 붓이 이끄는대로 쓰자고 필명을 이렇게 정했지만, 실은 그렇게 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글 하나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평가받는 온라인에서 신중한 글쓰기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글 하나 쓸 때마다 일일이 오해를 겁내서도 안 된다. 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글쓰기가 즐거울 리가 없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취미 생활이 즐겁지조차 않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옳다.

공자님도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데도 거리낄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더니 나이가 일흔이 되었단다.(從心所慾不踰矩)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거리끼지 않기란 좀처럼 어렵다는 것이다. 그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