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에 방송 출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비판할 수 있을까? '조중동은 나쁘다'는 전제를 옳은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해도, '조중동은 나쁘다'와 '조중동이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에 방송 출연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는 절대적인 인과 관계가 있지 않으므로 처음의 질문은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아마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판단의 여지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사람으로 몰린다면, 그것은 추론이나 논증보다는 경험적 판단에 개인의 기호가 투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물론 누군가가 경험적 판단을 더욱 신뢰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까닭은 없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적 판단을 서로 공유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철썩같이 믿어 버리는 데서 발생한다.

오류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믿음은 강력하지만 위험한 도구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긍정적인 가능성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엇으로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더구나 이런 믿음에는 으레 제동 장치가 없기 마련이어서, 운 나쁘게도 최악의 상황으로 향한다 해도 더 이상 말릴 방법이 없게 된다.

가령 '김연아가 조선TV의 일일 아나운서로 나온다'는 근거없는 정보에 기대어 누군가를 비판하다가, 실은 '인터뷰에 응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던가, '조중동에 투고 및 출연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는 믿음에 기대어 누군가를 비판하다가, 실은 그것을 비판하던 사람도 조중동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일 따위가 그렇다. 오류가 드러났을 때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상대방의 왜곡이나 날조로 우기거나,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모욕함으로써 불리한 상황을 억지로 면피하려 하는 것이다. 이성이라는 제동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런 경우,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하다. 

매사에 합리적으로 사고하려는 태도는 간혹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 우리는 좋든 싫든 경험적 판단을 우선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야식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에 칼로리와 영양성분을 들먹이며 욕망을 억누르기만 해서는 제 명에 살다 갈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 판단에 따라 살면서 간혹 저지르는 실수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를 무조건 억누르려고 한다거나,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억압하려는 것이야말로 마땅히 경계해야 할 잘못된 태도다.

어떤 한 개인의 종합편성채널 개국 축하에 대한 갑론을박이, 케케묵은 진영논리에 따른 싸움판으로 변질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 개인의 소신과 품성에 대한 대중의 지나친 의미부여가 낳은 촌극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제동장치가 없는 믿음의 발로와, 그 실수를 자신과 다른 정치적 신념을 지닌 이들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려는 이기주의의 충돌이 불필요한 논쟁을 낳았다.

말실수에 대한 지나친 응보는 대중을 상대하는 예술계 종사자들의 십자가로 여겨야하려니와, 이번 논란의 주요 촉매가 된 어떤 이의 섣부른 입놀림에 대해서는 "말이란 해야 될 때가 아니면 한 마디도 많은 것이다."는 명심보감의 경구로 내 의견을 갈음하고 싶다. 이는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하여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070으로 시작하는 스팸 전화가 걸려왔다. 천만 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털려도 죄송하다는 한 마디 말 없이 '클린 비밀번호 캠페인' 따위나 뻔뻔하게 벌이는 대기업들 덕분에 불이 나는 전화통은 서민들의 몫인데, 전화번호가 스팸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걸려 온 번호 목록을 눌렀더니 '#1215' 네 개가 가지런히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맞다. 저 번호.' 하고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제 첫 회를 방영한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퀴즈쇼 '1억 퀴즈쇼' 말이다.

쇼는 시작부터 어딘지 황당스러웠다. 언뜻 보아도 100명을 훌쩍 넘어갈 것 같은 출연자들이 어수선하게 앉아서 문제를 푸는 가운데, 일반문자나 다음의 마이피플 서비스를 이용하여 퀴즈에 참여한다는 시도는 독창적이었다. 하지만 연예인 게스트야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서라도 스튜디오에 나올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그 외의 저 수많은 방청객들이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었겠지만, 지나치게 수가 많아서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퀴즈쇼의 당첨금 분배방식이었다. 1억 퀴즈쇼라길래 처음에 나는 당첨금액이 5천만원인 KBS '1대100'을 겨냥하고 만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누구나 퀴즈 쇼 이름에 1억이 들어간다면 한 명에게 1억이 주어질 것을 예측할 것이다. 하지만 그 예상은 첫 문제부터 빗나갔다. 첫 문제를 맞춘 사람들 중에서 추첨하여, 총액 천만원을 10만원씩 100명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문제가 총 몇 개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이라면 문제를 다 맞추어도 1억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뭔가 낚시당했다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생방송인데다가 시청자들이 참여하게 되어 있으니 인터넷 검색이 불가능할리 없다. 그래서 아예 스튜디오에 검색이 가능하도록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게스트들과 방청객들도 핸드폰 사용을 자유롭게 하도록 둔 것 같았다. 문제는 출제의 질에 있었다. 어차피 검색을 막을 수 없으니, 검색해도 답이 잘 안 나오는 문제를 내야 할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너무 쉬워졌다. 명색 퀴즈쇼가 문제풀이가 주가 아니라, 오로지 운에 따라서 희비가 갈리는 로또 방송처럼 된 것이다.

문제가 거듭될수록 액수는 20만원이 50명, 100만원이 10명이라는 식으로 점차 커져 갔는데, 압권은 마지막 문제였다. 5천만원짜리의 문제를 정답자 한 명에게 밀어준다는 것이었다. 뭐랄까 액수가 너무 개연성없이 커져버렸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찌어찌 흘러가서 정답자 한 명의 전화번호가 화면에 찍혀 나왔다. 이어서 전화 연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것이었고, 진행자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답했다. 진행자는 한 문제를 더 맞추면 5천만원을 지급한다고 선언했다. 제작진은 여기가 프로그램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어서 나타난 문제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얼굴을 화면에 늘어놓고 순서대로 나열하라는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문제였다. 꼭 초등생이 역대 대통령의 얼굴을 알고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저녁 시간대의 생방송이라 옆에 가족이 있을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마치 5천만원을 거저 주기로 작정한 듯한 제출이었다. 5천만원을 걸고 하는 퀴즈라면 그 격에 걸맞는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결국 5천만원은 호들갑스러운 축하 메세지와 함께 심드렁한 목소리의 그 아이에게 주어졌다. 거기까지 보고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더 웃긴 것은 시청자들이 참여하면서 보내는 문자메세지의 요금이 건당 1백원이었는데, 퀴즈쇼를 진행하면서도 진행자가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지만 쇼가 끝나고 나서 인터넷 뉴스 기사로 확인한 결과로도 요금의 총액이 1억원을 훌쩍 넘어가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사행성 돈 잔치요, 술자리에서 언쟁을 하던 중 이따금 벌어지는 술값내기 퀴즈의 전국민판 버전이었다.

반드시 퀴즈쇼가 교육적으로 올바를 필요도 없으니, 퀴즈쇼를 빙자한 예능이라고 봐도 상관은 없겠는데, 그래도 술값내기의 전국민판 버전은 좀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4백원이나 문자를 보냈는데 땡전 한 닢 벌어들이지 못해서 화가 나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11월 8일 첫 글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개의 글을 썼다. 이 글을 포함하면 15개가 되는 셈이다. 방문자 수는 200명을 약간 넘었으나 블로그에 글을 올릴뿐 다음뷰나 믹시, 올블로그 같은 메타 사이트로 발행하지 않는 관계로 직접 검색유입이나 댓글 교류를 통해 들어오신 분들밖에는 없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있으면 글을 발행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웬만하면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다.

논란이 될 글을 피하고, 단순 잡담만 쓰기로 한 처음의 계획이 시일이 지나면서 조금 틀어진 감이 있는데, 다시 초심을 추스르려 한다. 물론 옳은 말이라면 그것이 설령 조금 피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나처럼 겁을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얘기지만, 나는 아무리 해도 김수영의 시에서 갈파한 것처럼 대개 사소한 것에만 분개하고 만다. 그건 내 머리가 나쁜 탓도 있겠다. 하여 나는 분노를 잘 믿지 않는다. 정당한 분노는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무겁게 표출되는 것이지 가벼운 블로그질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말이 그래도 결국 가끔은 기웃거리게 되겠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이제 달력을 한 장 뜯어내게 되었으니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12월을 시작해야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지만, 이 블로그로서는 두 번째로 맞이하는 달이다. 의미가 새롭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처음으로 예약 발행하는 글이다. 설정을 잘 했으려나 모르겠다.)

종합

2011 KBO 골든글러브 예상

    포수
  • 강민호
  • 양의지
  • 조인성
  •  
    1루수
  • 이대호
  •  
  •  
  •  
    2루수
  • 안치홍
  • 오재원
  •  
  •  
    3루수
  • 최정
  •  
  •  
  •  
    유격수
  • 이대수
  • 강정호
  •  
  •  
    좌익수
  • 최형우
  • 이병규
  • 김현수
  •  
    중견수
  • 이용규
  • 이종욱
  • 전준우
  •  
    우익수
  • 손아섭
  •  
  •  
  •  
    지명
  • 홍성흔
  • 김동주
  • 박용택
  •  
    투수
  • 윤석민
  • 오승환
  • 정우람
  •  
  •  

포수

2할 후반대(.289)의 타격과 20개에 단 하나가 모자란 홈런 수를 기록한 강민호가 3할을 간신히 턱걸이한 양의지에게 일견 크게 앞서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일단 규정타석을 살짝 넘은 양의지보다 한 해를 꼬박 나선 강민호의 안정성이 돋보이고, 명실상부한 차기 국가 대표팀 안방마님의 이름값까지 더해져 포수 황금장갑은 강민호가 유력하다. 지난 해의 장갑을 가져 간 조인성의 성적도 명함을 내밀어 볼 정도는 된다.

지명타자

타율 .286 17홈런의 성적으로 팀 내 최다 홈런을 기록하긴 했지만 미처 하락세를 피하지 못한 두산의 김동주와, 3할타율, 15홈런, 13도루로 올해도 호타준족의 존재감을 과시한 박용택, 그리고 역시 3할 타율을 기록한 홍성흔의 삼파전이다. 기록으로 보아서는 박용택이 앞서는 듯 하지만 전반기의 수위권 성적에서 후반기의 체력 부족으로 그저 준수한 성적으로 급락한 탓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전망이다. 이름값이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하는 기자단 투표에서 홍성흔이 유리하다는 것도 고려할 부분이다.

1루수

삼관왕(타율,안타,출루율) 이대호 끗.

2루수

.315의 고타율과 9홈런을 기록한 안치홍의 생애 두 번째 황금장갑이 예상된다. 오재원의 성적은 안치홍에 견주기 민망할 정도지만 도루왕 간판의 힘을 의지할 만하다. 오히려 규정타석 미달로 후보에 오르지 못한 정근우의 준수한 성적(.307 6HR 20SB)이 대결구도를 형성할 만 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유격수

작년에 이어 올해 유격수 황금장갑도 격전이 예상된다. 꿈의 유격수 3할을 기록한 이대수와, 그에 살짝 못 미치는 성적(타율 2푼차, OPS 3푼차)을 거뒀지만 타점 13개를 앞선 강정호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다. 두 선수가 우승권과 거리가 먼 한화와 넥센 소속의 선수인 까닭에 기량 외적인 요소가 작용할 건덕지도 별로 없다. 3할의 상징성 때문에 이대수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다.

3루수

최정의 수상이 확실시(3할 20HR 15SB)된다. 마땅한 경쟁자도 없다.

외야수

지금껏 중견수 한 자리를 보장해 왔던 관례상 시즌 말미까지 타격왕 기조를 지켰던 이용규에게 순조롭게 한 자리가 돌아갈 듯하다. 또한 삼관왕(홈런, 타점, 장타율)을 차지한 최형우의 자리도 굳건하다.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이병규(9), 손아섭의 양파전을 예상한다. 타율 3위(.338), 홈런 11위(16개)의 이병규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타율 5위(.326), 홈런 12위(15개)를 기록한 손아섭이 뒤를 쫓고 있는 형국이다. 덧붙여 김현수, 전준우, 이종욱의 성적도 준수하다.

투수

4관왕 윤석민, 돌부처 오승환의 대결. 선발과 마무리의 무게감 차이가 아니라면 박빙이었을 대결이었겠지만, 여기서는 윤석민의 압승이다. 모스트 밸류어블 플레이어가 윤석민에게 돌아갔으니 황금장갑은 오승환에게 양보할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한 번쯤 상상해볼 만은 하다. 이상.

아킬레스가 뒤뚱뒤뚱 앞으로 나아가는 거북이의 뒤를 쫓는다. 아킬레스가 열심히 달려 처음 거북이가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하지만, 이미 거북이는 그동안 앞으로 약간 전진해 있다. 다시 아킬레스가 열심히 달려 거북이의 두 번째 지점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시 거북이는 그동안 앞으로 조금 나아가 있다. 이런 식으로 달리기가 계속되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제논의 역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역설이다.

어머니가 서울 법대를 들어갈 것을 종용해, 전국에서 4천 등에 들 정도로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도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한 아이가 결국 어머니를 살해하고는 무려 여덟 달 동안이나 집 안에 방치한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접하고 분노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도대체 왜 이 가족은 이토록 불행한 결말을 맞아야만 했을까. 나는 그 원인이 실패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심어 넣는 건 바로 과도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이제 '서울법대'는 더 이상 진리를 배우는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은 자들의 왕좌에 불과하다.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 전교 1등이 하루에 열 시간을 공부하면 너는 하루에 열 한시간을 공부해라. 그 녀석이 열 두 시간을 공부하거든, 너는 열 세시간을 해라. 그 녀석이 모의고사 399점을 맞거들랑, 너는 400점을 맞아라. 그러면 너는 이긴다. '조금만 더 하면 절대로 따라잡힐 리 없다. 왜 그걸 못하냐?', 이게 바로 우리 시대의 제논의 역설이다. 무작정 투입의 양만 늘이면 경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아니 적어도 질 일은 없다는 막무가내식 논리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제논의 초상이다.

(일부수정)

출처: Flickr.com(ID: Vlad Archic)


돌아오는 길에 기십 층 높이의 종합병원 불이 전부 켜져 있는 것을 보며, 앞으로도 밤새 계속 켜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환한 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어둡게 꺼져 갈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일찍이 불을 끄고 자리에 든 집 중에서는 그렇게 응응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어두운 가운데 삶이 환하게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니 문득 우리의 인생이란 어둠 안에도 빛이 있고, 빛 안에도 어둠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쓸 게 없을 때는 무엇을 써야 할까. 소재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글감이 많아지기는 한데, 당장의 이슈를 글로 옮기는 것은 언제나처럼 꺼려진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감정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러면 언제나 문제가 일어난다. 결국은 내가 글을 잘 쓰는 수밖에는 없는데, 그러려면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늘 쓰기'를 실천하려고 하는데, 그럼 결국 쓸 게 없을 때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 하는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아 머리아파.

참 쉽죠?

글쓰기 참 쉽죠? 밥 로스 할아버지만 있으면 정말 쉬울텐데...


한동안은 계속 스킨 수정이나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사이드바를 좀 정리해야 되는데...
이윤기님의 블로그에 게재한 문성실씨를 위한 변론 글을 읽고 쓴다.

나는 이윤기님의 변론이 충분히 제기할 만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그간 무관심하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5백만원이라는 다소 높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공정위의 제재 방식은 옳은 명분으로 한 일일지라도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이윤기님의 전체적인 논점에 동의하는 것이다.

파워블로거는 네이버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하는 인기 블로거를 말하는 것으로 공정하다거나 객관적인 선정 기준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문제가 된 네 곳의 블로그를 살펴 보면, 전부 구매력이 높은 2-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 관련 블로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국지성, 특수성으로 미루어 이번 사태는 블로그 서비스라는 인터넷 추세 전반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할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일로 블로거의 수익 창출 자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 일에 대한 여론이 네이버나 여타 포털 사이트의 블로거 서비스 정책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지 의아하다. 이 문제는 접속자만 많이 유도하면 저작권, 불법 수수료 문제와 같은 법적, 도덕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파워블로거로 내세우는 네이버 서비스의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공정거래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고지조차 지키지 않은 채 고수익을 올린 블로거 개인의 법적, 도덕적 책임은, 네이버에 대한 질타와는 별개로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에는 명확히 선을 그어 놓고,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가 기형적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 나라의 인터넷 지형생태계에 대한 문제를 다시 고민하는 것이 블로거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다.
모처럼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근교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점심이나 먹을까 해서 나왔는데, 어머니가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여행으로 바뀌게 되었다.

닭갈비를 먹고 나니, 이대로 돌아가기는 허전해서 가평에 있는 '쁘띠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를 테마로 하는 공원이라고만 들어서 입장료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춘천에서 가평까지 멀고 먼 길을 돌아 궁벽진 곳까지 찾아 들어갔는데, 의외로 8천원이라는 거금이었다. 주차비는 받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건 나 뿐이었고, 대부분의 손님은 연인들이나 아이들이 딸린 젊은 부부가 대부분이었다. 별 구경거리 없이 달달한 눈요깃감이 대부분인 연애지향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뭐, 내 돈 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겠다는데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겠냐마는 실은 조금은 민망했다. 쩝^^ㅋ

쁘띠프랑스의 대체적인 풍경

쁘띠프랑스의 대체적인 풍경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만든 공원이라서, 생떽쥐페리의 추모관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생떽쥐페리의 생전 모습들을 담은 사진이나, 어린왕자의 노트 구상, 오리지널 일러스트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어린왕자의 실업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지리학자를 담아 오려 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 보니 지리학자가 아니라 실업가의 일러스트라고 한다. 아쉽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들거나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다 제하고 나니 쁘띠프랑스와는 별 관계가 없는 사진만 남았다. 이왕 올리기 시작한 거 끝까지 올려 본다.

돈키호테

돈키호테의 늠름한 자태


자기 인형

가장 오래 된 인형이라고는 하는데 의외로 가격이 얼마 안 했다...


가운데 광장에서는 팬터마임 공연도 있었고, 분위기는 연인들이 오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그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교외로 나와서 색다른 곳들을 둘러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쁘띠프랑스를 찾아 가려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더니 원래의 목적지인 가평의 쁘띠프랑스 말고도 또 하나가 더 나타났다. 실수로 잘못 눌렀다가 강제로 서울로 돌아갈 뻔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쁘띠프랑스라는 곳을 찾아 가려는 연인분들이 있으시다면 조심하시기 바란다. 고작 길 잘못 찾았다는 이유로 헤어지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성격상 기성 스킨을 그대로 쓰지는 못하고, 결국 가장 기본스킨처럼 보이는 것을 이리저리 뜯어서 적당히 만들었다. 아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내 실력이 미치지 못하고, 쓰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조금씩 보완해 가면서 쓸 생각이다. 하지만 역시 스킨을 만들면서 느끼는 건 다 치워 버린다고 "깔끔"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단순한 아름다움은 복잡하고 정교한 것을 넘어서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뭐, 어차피 나는 블로그에 목숨 걸 생각이 없으니까 이 정도면 되었다. 스킨 깨작거리느라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편이라, 뭐 하나만 맘에 안 들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 우선순위를 배분하는 간단한 요령도 터득하지 못한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매사를 적당히 적당히 하려는 자세도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 마리 토끼를 잡기에 골똘해서 농사일도 집안일도 다 내팽개치는 등신짓을 해서는 안 되겠다.

공부를 할 때도 이러한 내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일례로 시험에 임박해서는 Enthalpy라든가 Entropy의 오묘한 이치를 탐구하는 데 푹 빠져 정작 문제풀이를 내버려둔 덕분에 성적을 망치는 경우가 있었다. 머리나 좋았으면 그런 탐구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으련만 그것도 아닌 바람에 난망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뭐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문제풀이에 그렇게 약한 편도 아니다. 내 찍기 능력은 평균을 훌쩍 넘어간다고 자부한다. 다만 나는 오묘한 탐구에 빠져서 문제풀이를 준비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요컨대 나는 시험을 앞두고 문제풀이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우선순위 설정에 실패했다. 탐구야 시험 전에도, 시험이 끝나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괜히 쓸데없는 잡소리가 길었다. 주말을 앞두고 되게 심심했나보다.
아마도 내가 다른 블로거와 화기애애한 의사소통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존댓말을 쓰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논리적인 글이나 정보전달을 위한 글을 쓰는 블로그들도 신뢰감을 주는 문어체의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불특정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 나는 어느 쪽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논리는 애저녁에 가져다 버렸고, 전달할 만한 정보도 별로 없다. 설득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관심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편인 내가 다소 감정을 배설하는 형태로 글을 쓰는 내 블로그는 반말이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 말은 존댓말과 반말의 경계가 너무 또렷해서 번거로울 때가 있다. 지금처럼 블로그를 반말로 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존댓말로 쓰는 것이 좋을까 굳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번거로움의 사례로 적당할 듯하다. 일본어 사용자나 중국어 사용자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물론 일본어나 중국어에도 경어체의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이 있겠지만, 표현을 고르는 것과 어미를 고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만약 비존대형 종결 어미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좀 억울한 일이다.
분식집 떡볶이를 참 좋아하는데, 몸에 좋지 않아서 자주 사 먹지 못한다. 그래서 참다참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로 했는데 의외로 잘 만들어졌다. 기록차 올려 둔다.

사진을 많이 찍진 않았다. 간단하게 재료부터 정리하면 먼저 물. 물이 참 중요하다. 미리 육수를 만들어 두면 좋은데, 마침 멸치와 가쓰오부시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다. 보울에 적당히 부어서 데우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떡이다. 팔팔 끓지는 않지만 적당히 보송보송 공기방울이 솟아오를 때쯤 먹을만큼 떡을 넣어준다.

끓기 시작하면 양념을 넣는다. 순서는 각자 취향대로겠지만. 고추장을 듬뿍 떠서 넣었다. 그리고 간장과 미림 약간, 분량의 설탕과 물엿을 적당히 넣어주면 기본은 다 한 셈. '약간', '분량의', '적당히' 같은 형용이 우리나라 음식에는 맞춤이다. 어차피 맛은 왕창 넣은 다시다가 해결해 줄 터.^^

양념장의 비율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나온다. 이건 무엇이 정답이랄 수가 없이 취향과 경험 사이에서 본인이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고추장을 1로 놓고 간장 1/2 + 미림 1/4 + 설탕 1/2 + 물엿 1/2 정도의 비율로 했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물기를 좀 더 줄일 수도 있고 좀 더 칼칼한 맛을 낼 수 있다. 나는 고추장이 엄마가 만드신 거라 고춧가루를 특별히 더 넣지 않았다.


파를 넣고 졸이기만 하면 된다. 국물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이럴 때는 약불에 최대한 오래 끓여서 국물을 날려주면 된다.


맛을 보니 조금 싱거워서 소금 1작은술을 추가했다.



사진상의 비주얼은 별로다. 카메라 탓이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내가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분식집 떡볶이맛을 79.45% 재현해 주고 있었다.

다음 료리는 무엇으로 할까? 오늘의 성공으로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마음 같아서는 카츠동을 오랜만에 먹고 싶은데,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무리일 것 같다. 근데 하고 싶다.

툴바

아들아, 뉴스가 안 보이니 더 큰 모니터를 사달라.

툴바라는 도구는 이름은 좋지만 쓸데는 별로 없는 프로그램이다. 컴퓨터를 좀 쓸 줄 알아야 조금이나마 소용이 되는데, 툴바를 권하는 이들의 마수(魔手)에 넘어가는 이들은 정작 툴바를 별로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니 '툴바 권하는 사회(시스템)'의 아이러니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이들은 툴바가 유용한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 것 같다. 그저 다운로드 수나 늘려서 자기 회사의 점유율 지표에 0.01%라도 추가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나라의 IT가 요 모양 요 꼴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오늘도 엄마 컴퓨터의 네이버 툴바를 지우면서 네이버를 향한 조롱을 흠씬 써 주었다. 읽지도 않을 고객의 소리를 굳이 쓰라고 종용하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다. 블로그에 글도 제대로 못 쓰는 내가 수백 바이트가 넘는 장문의 글을 네이버에 기고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분명 이 바이트들은 수치화되어 고객과의 소통지수와 같은 지표로 쓰일 것이 분명하다. "네이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나는 오늘도 네이버 툴바를 지우고, 불만의 소리를 접수했다. 홀가분하다. 이제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개그콘서트를 볼 수 있는 일요일이다. 같은 일요일이라도 하는 일은 늘 달라지지만, 개그콘서트로 마무리하는 것은 늘 같다. 나는 TV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TV를 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개그콘서트만은 예외다. 개그콘서트가 없는 일요일을 상상할 수 없다. 거의 10년 가까이 나의 일요일을 책임지고 있는 개그콘서트는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그 10년 중 아마 첫 코너부터 보지 않았나 싶은 달인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끝난다고 한다. 김병만의 발목에는 아직도 뼛조각이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김병만이 코너를 그만두기를 바래 왔다. 언제부터인가 달인을 보면 웃음보다는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픔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감동도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감동보다 웃음을 느끼기를 바란다. 웃음이야말로 개그콘서트가 존재하는 첫째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달인만 17년간 해 오신 달인의 달인 김병만 선생이 류담의 손부채에 머리를 맞고 퇴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동안 김병만이 우리에게 준 웃음과 감동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될 것 같다. 그가 건강을 되찾고, 더 건강한 웃음을 주기 위해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가 있든 없든 개그콘서트는 앞으로도 계속 나의 일요일을 책임지겠지만,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웃음에서 항상 빈 자리가 느껴질 것만 같다.

덧: 하지만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김병만이 개그콘서트를 그만두더라도 휴식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블로그도 그렇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다. 쉬는 날도 외출하는 것보다 방해받지 않고 컴퓨터나 하고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혼자놀기의 달인인 셈이다. 컴퓨터 하나만 갖고도 이것저것 하는 것이 많다. 그런데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블로그도 벌써 여러 번 만들었다 지웠다 했다. 그 놈의 은둔 증후군 때문이다. 블로그를 계속 하다 보면 마치 퍼츨을 짜맞추는 것처럼 내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누군가를 때리고 싶다거나 공포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예방 차원에서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우울증 테스트라는 것을 시도해 봤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우울증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니깟 게 뭘 안다고' 이러고 웃어 넘기긴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켕겼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은둔을 좋아할 뿐이라고 해두자. 날카로운 것은 자꾸 나를 열어보려고 하는 사람들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아니면 내가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정확히 5일 35~40시간을 공부하면서 2,500문제 가량을 풀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그 정도면 날카로워질만 하지 않을까?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약간 두근두근하기는 했지만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밤을 보낸 것 같다. 나는 큰일을 앞두고 지나치게 가슴졸이는 일이 잦은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뒤로 잠을 푹 자 둬야 다음 날 머리 회전이 잘 된다는 것이 지론이 되었다. 그러나 한참 뒤에 훈련소 입소 전날에는 '지론'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지론'이란 것이 내게 도움을 준 것은 수능 전날이 유일했다.

방금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수능시험장 안내문이 지하철 역사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런 사소한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안내 문구부터 글꼴까지 그대로인 모습을 보다 보니, 잠깐이었지만 내가 내일 시험을 보러 가기라도 하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라면 분명 나는 사양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두근거림은 행운의 징조처럼 반가웠다. 수험생들이 수 년 전의 나처럼 모두들 단잠을 잤으면 좋겠다.
필 충만하게 그냥 붓이 이끄는대로 쓰자고 필명을 이렇게 정했지만, 실은 그렇게 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글 하나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평가받는 온라인에서 신중한 글쓰기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글 하나 쓸 때마다 일일이 오해를 겁내서도 안 된다. 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글쓰기가 즐거울 리가 없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취미 생활이 즐겁지조차 않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옳다.

공자님도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데도 거리낄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더니 나이가 일흔이 되었단다.(從心所慾不踰矩)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거리끼지 않기란 좀처럼 어렵다는 것이다. 그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