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로 한 오후 두 시의 눈 연착.
삼십분 전 멀리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이야기들.
정작 내 생각은 잊어버렸는데.
웅얼거리는, 투닥거리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길에서, 하늘에서, 어두운 바다에서
며칠째 대답하지 않는 소음들로
한껏 달아오른, 주인 없는 공포가 총성처럼 다가온다.
신문에서 연착한 너의 이야기를
넘긴다. 싸늘한 종이로 덮여버린다.
하늘이, 이 세상이, 종잇장 같은 구름 사이로,
반쯤 덮인 눈꺼풀 사이로,
앞으로 무엇을 읽게 될까 사람들은.


너는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별이다.
나는 너를 잠시 바라보는 별이다.
그 사이에 놓인 짙은 무색의 질량들을
우린 밤이라고 부른다.
너와 나에겐 그런 같은 점이 있다.


달빛이 꺼지고 그림자가 어두워진다. 녹아버린다. 잠시 후 나는 조금 더 진지해졌다. 멀리서 예감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빛깔들이 점점이 나를 바라본다. 어쩌면 그림자가 어두워지기를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아까 누가 내게 쥐어준 봉투를 살며시 뒤집어본다. 달빛 몇 개 떨어질까 싶기도 하다.


매달려 있다
공깃줄에 목 매달고
살아있다. 너의 온기에 매달려,
부호처럼 단호하게, 여러 번 끊어지는
신호를 느끼고 쓰다듬으며
양호한 기억을 다듬으며
살아있다고 흐느끼며 매달려 있다.
옆에, 앞에, 위에 아래
여러 번씩 번갈아 가며 깊이
또는 얕게 생각하며,
주렁주렁 매달린 너희들, 목자시여
너의 온기를 잡고 살아갈지어다.
아파도 앞으로 매달려,
삶을 어루만지며.


현대일반화학이 말을 걸었다.
스무디가 먹고 싶어.
난 세 번째를 참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땀을 흘렸다.
흐릿한 보라색이었다.
그건 무지개야.
12층에서 그가 지적했다.
공기가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떠나지 않았다. 오늘.

서둘러 뜨거워진 알갱이를 길게 비틀어내렸다. 신맛이 비명처럼 뜨겁다. 흘린 눈물의 양만큼 마셔야지. 한 번 끓여낸 환희가 내 목젖을 검게그을렸다. 이제 그걸 비틀어내릴 차례다. 에스프레소처럼 단순하다.

http://global.donga.com/View?no=2106


기도를 몇 번이나 했는데 연결이 안 되었나 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하느님.

어제는 뒷집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먼저 갔어요.
혹시 만나 보셨나요? 글쎄, 불법주차 단속에 걸려서는
돈이나 좀 쥐어줄 요량으로 주머니를 뒤지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았대요.

아마도 못 들으셨겠죠.
만물의 아버지이신 주님께서도 가끔 놓치시는 게 있겠죠.
그래, 저 만나러 가려고요.
주님 계시는 저 하늘 어딘가로 지금 당장요.

설령 길을 잘못 들어서
어디서 저 눈 감은 얼굴 다른 이들이 본다 하여도,
그때 이미 주님께 이 세상 이야기 드리고 났을 터이니,
그 얼굴에 웃음꽃 피어 있겠죠?

아, 그리고 주님, 이 세상에 와이파이 빵빵 터지게 해 주세요.
모든 백성 기도 다 들으실 수 있게 말이에요.
그럴 수 있으시죠?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죠?

-

네이버에서 한때 댓글 시인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을 한 번 따라해 보았다.

신도림 당역종착
연결음

참 멋진 멜로디

지금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플로피 룩(Floppy look) 달빛과
두랄루민 그림자

One Fine day
내일은


-

예전에 쓴 시(2006-11-05),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히려 감성은 그때가 나은 듯. 다만 2행의 "참 멋진 멜로디"는 직설적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감정을 감추어냈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예 지워도 좋겠다. 그렇게 따지만 마지막 연도 별로...

봄을 뒤집었다.

먼지가 날아와 산이 되었다.
가라앉은 하늘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를 팔아 변치 않는 사람으로부터
흔들리는 바람을 덮어버렸다.

봄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이 친구, 이제 막 나가자는 거지. 이걸 당장...(웃음)
지문으로 웃지 마십시오. 어색합니다.
연락은 곧 올 겁니다. 여름이
내일 스케줄을 잡아 놓았으니까요.

산이 날아와 길은 이미 만원이고,
교통비를 지불한 계절은 하루에 한 번씩
중앙선을 침범하고는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흔들리는 사람들이 마구 걸어다니다가,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나다.
손가락을 뻗어 마침표를 눌렀다.

너를 본다.
너의 그림자를 본다.
2차원으로 배열된 너의 역사를 본다.
네가 걸어갔을 때 발자국마다 조금씩
그림자를 흘렸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너였다.

너를 본다.
그림자인 너를 본다.
3차원으로 배열된 그림자인 너를
시간이 흘러가며 흔들린 자리마다
그림자를 남겼다.
그게 바로 너다.

목적어 없는 문장이 마침표를 조금씩 밀어내면서 나아갔다.
그동안 쉼없이 써내려 간 것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낼 때마다 네가 떠올랐다.

왜 서른 네 살은 사랑을 할 수가 없나.
이 세상에는 지불해야 할 것이 많다. 내 젊은 시절에
너를 찾아다니며 사용했던 쉼표들 때문에
지금은 간결하게 살아야 한다.

길을 잃다.
처음부터 잃었다. 내가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만 내가 지금 "길을 잃다."라는 3연의 첫머리에 얹었을 뿐이다.
내가 너를 항상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너 없는 삶이 계속해서 간다.
이 문장이 계속 마침표를 밀어내며 나아가는 것처럼

*제목변경: 길을 잃다 -> 자문자답

봄바람 같다.
꿈이란 늘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라데이션
짙푸름에서 노랗게 날아오르는,
어제보다는 추워졌고, 내일보다는 따뜻한
봄바람 같은 아침.

기상이 쾌청하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마음부터 일어나게 된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시린 일이지만,
여름으로 달려나갈 달력을 보며
거울 속의 내 얼굴에 혈색을 채워넣어야 한다.

왜 사랑하지 않겠는가.
내 어린 시절이 좀더 푸른색이었다면
그게 봄이라 해도,
자라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봄바람 같다.
모든 것이 달려나간 자리를 보며,
모든 것이 비어버린,
봄이다.

시를 쓰고 싶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언제까지나 소망에 머무르고 있는 나의 시가 예정일을 훨씬 넘기고도 세상에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가끔 초음파로 나의 시를 바라본다. 그것들은 덜 여문 단어들과 흐릿한 문장들로 뒤척이고 있는 하나의 덩어리다. 가끔 하품을 하기도 하는데, 졸다가도 그 하품을 꿈에서 보곤 한다. 그래봤자 펜만 들면 사라져 버린다.

허니버터칩 같은 가공의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건 먹어봤다. 그리고 사실 허니버터칩을 먹어도 그렇게 맛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직 내 배가 아프다는 거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내 아이를 볼 수 있을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시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시를 쓰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를 쓰고 싶었던 것까지는 진실인데, 막상 시를 써놓고 그 시를 어떻게 다룰지는 생각은 안 해봤다. 고민 없는 불장난에 불과했다. 그건 내가 삶을 대하는 가벼운 태도와 똑같이 닮아있다.

여전히 배가 아프다. 그리고 계속 배가 아플 예정이다. 시를 쓰고 싶었다. 정말.

그림 속에서 나올 줄 알았지.
많은 것들이, 내 앞으로 달려나와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

너의 웃음은 하얀 빛깔이었고,
나의 기다림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야기들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그림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
멈추었다.

물을 주지 않았는데 이파리가 누렇게 떴네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뜨거운 바람에 녹아버린 플라스틱임을 깨달았다.
요즘은 플라스틱도 사랑을 해요. 자라다가 멈추었다가 죽는답니다.
떨어진 이파리 몇 개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제 시간에서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남은 것들은 모두 페이드 아웃이다.
그림 속에 우리 모두의 환타지가 갇혀 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러면 화나지.
내일이면 나올 줄 알았지.
나는 또.

가만히 하루를 자른다.
1시 반이 2시 반이 될 때까지의 느낌으로,
잘라내서 무심코 버린다.

한때는 쓰레기통이 길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버려진 시간들을 모아서 봉투에 담아서
또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규칙적으로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 만든 탑이
공기처럼 사람들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2시 반이 3시 반이 될 때쯤
허리춤에 진동이 울리고 한 통의 죄책감이 배달된다.
또 다시 하나를 잘라내어 버렸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즘들어 콜라가 너무 맛있다.
이빨이 상할지도 모르니 좀 줄여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우유를 좀 사 왔어. 혹시 키가 더 자랄지도 모르잖아, 하고
작게 웃었다.
그 우유를 먹은 뒤에,
또 하나의 죄책감이 배달되어 왔다.
어제 뱃속에 버린 믹스커피가 이제 맹장에 도착했다고 진동을 보낸다.
그때서야 난 이제 맹장이 없다는 걸 깨닫지만,
뭐 좀 어떤가.

3시 반에서 4시 반이 되기 전에
정확히 세시 오십 삼분에 마지막 시간을 잘라내어 버리고
버스를 탔다.
하루종일 남은 것이라곤
이 글 밖에는 없다. 그래서 여기다 버린다.

연기가 뿌리를 뻗어,
발걸음을 단단히 붙잡는다.
죽음으로 연명하는 자본주의 때문에.
냄새로 불타는 하루는
아무에게도 이해되지 않는다.

곳곳에 자란 담배나무에,
길게 늘어선 가지들,
디스 한 갑을 사기 위해
오늘도 죽는 사람들.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아팠다. 떠도는 입자 같은 삶이라도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아프지 않을 것이었다. 요컨대 내 문제는 내가 '충분히' 이기적이지 못한 데에 있다.

"넌 너무 어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20대의 술자리에서 저 정도 쓴소리를 육두 문자 속에 넣어서 주고 받는 것은 반드시 진지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그냥저냥 넘어갔지만, 사실 그는 내게 매캐한 진실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난 그의 호의를 이제야 느끼고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 나는 어리다."

앞으로도 자랄 것 같지도 않다. 죽을 때까지 자라지 않는 건 어린왕자 뿐이 아니니까.

"어린 왕자는 뱀에 물려 죽었어."

중학교 때 내가 알았던 진실이란 그런 것이었다. 비웃음으로 답하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내 얼굴은 기억해도 이름을 기억하진 못했다. 아마 '어린 왕자의 죽음'도 잊었을 거였다. 그런 건 잊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친구는 자라는 사람이었다. 내게 어리다고 말한 친구도 자라는 사람이다. 나는 자라는 사람이 아니다. 내 돌아오는 길이 아픈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봉사하는 삶이나, 부자가 되기 위해 목숨거는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다. 나는 아직도 이기적이지 않다.


잘 소비하는 습관 덕분에
한 팔을 잘라 내고 명품 손을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게 되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예전의 삶을 비울 것이다.
그 곳에 내가 아닌 것들이 들어찰 때까지만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단단해진다.
겨울 새벽에 밟고 가는 눈길처럼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안고,
내내 깎여나간다.
그렇게 조금씩 깎이다 깎이다
해토머리 모두 가벼워질 때,
지난 추운 날숨들 품고
한때 파랗게 언 미소를 지었던 것만
기억하며 녹아져 갈 것이다.

단단한 땅 위에 발 딛고 자라나는 것들 사이에서,
내가 말하다 만 이야기들을 둘러본다.
그 중에는 혼자 썼다가 지워 버린 인생도 몇 개나 있다.
그냥 빈 종이였으면 좋았을걸, 하다가도
검게 망쳐버린 것들을 다시 비워내는 것도 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불합리한 공기를 떠다니며, 마시며, 비워내며.

청결하지 못한 시간을 뒤쫓아왔다.
하늘이 담배냄새처럼 노랗다.
가을은 중얼대며 모르는 척 지나간다.
나는 마지막 남은 온기를 여몄지만,
저 멀리 걸어가는 빗방울들의 발자국 소리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남겨 놓은 작은 구름 하나
저 위에서 녹아 들고 있었다.

죽는 것은 과정이다
야근이 힘들어서 죽었고,
주량 넘치게 술을 먹다 죽었고,
그렇게 우리는 수없이 죽음을 빚지다,
언젠가는 숨도 엷어지고,
너를 바라볼 눈빛도 흐려져서는
몇 개의 약력만으로 살아가는 어느 시인이 될 것이다.

외로움은 사건이다.
수만 개의 페이스북이 외로움을 도용하고,
수만 개의 핸드폰이 외로움을 실어나르고,
그래도 밤마다 모텔들은 교회 십자가처럼 번쩍이더라.
외로움은 살아 있다는 쉼표다.
우리는 서로 죽음 한가운데서 뒹굴다가,
다시 태어난 아침으로 빚을 갚아서는,
얼굴에 주름의 약력을 더하고
건강한 우리의 이야기도 쓸 것이다.

살다보면, 길에서나
사람들이 주고받는 몇 개의 이야기를 들이마신다.
아무 뜻도 아닌 냄새.

단어 하나로도 나는 배가 불렀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못 하는 것이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읽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필요한 건 마침표 하나다.

기웃거리다 들른 까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읽고 간다.
그게 오히려 나았다.

시 말이야 시,
시발에서 뒷 글자를 떼면 시라고 시.
그러니까 시는 발이 없어.
발이 없으니까 아무데도 못 가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도 없다니까.

그게 바로 나.
오래된 잡지 같은 나.
자유분방하고 매력 넘치는 기자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뉴요커 스타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공무원처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칼퇴할 때까지
바보에는 어느 조사가 어울리는지
재미도 뭣도 없는 미팅을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사서는
쪼그라든 방광을 채우고 그리고 들어간 집에서
밤마다 섹스 판타지로 칼럼을 쓰지만,
어차피 단 한 명의 독자도 없어서 쓸모가 없는
그런 잡지 말이야.

내 기억에 너는 아름다운 잡지였다.
누구든 너를 읽고 싶어 했어. 그래서,
너는 방문 판매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지.
내 잡지는 말이야.
쪼글쪼글한 피부에 파운데이션을 흠뻑 칠한
집사님 같은 아줌마들이 집마다 찾아간단다.
(그래도 자기들은 처녀라고 우겼지 아마?)
초인종을 눌러서는,
뭣도 모르고 문을 열어 준 병신들에게 뜯어낸
그 월급으로 내 빈약한 망상을
다음 호에도 실을 수 있다고.

다음 호에도 나는 시를 실을 거야.
맞아. 바로 그 발 없는 시
나는 내 시에 발을 선물하고 싶어.
시발 시발
욕이나 실컷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