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뿌리를 뻗어,
발걸음을 단단히 붙잡는다.
죽음으로 연명하는 자본주의 때문에.
냄새로 불타는 하루는
아무에게도 이해되지 않는다.

곳곳에 자란 담배나무에,
길게 늘어선 가지들,
디스 한 갑을 사기 위해
오늘도 죽는 사람들.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아팠다. 떠도는 입자 같은 삶이라도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아프지 않을 것이었다. 요컨대 내 문제는 내가 '충분히' 이기적이지 못한 데에 있다.

"넌 너무 어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20대의 술자리에서 저 정도 쓴소리를 육두 문자 속에 넣어서 주고 받는 것은 반드시 진지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그냥저냥 넘어갔지만, 사실 그는 내게 매캐한 진실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난 그의 호의를 이제야 느끼고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 나는 어리다."

앞으로도 자랄 것 같지도 않다. 죽을 때까지 자라지 않는 건 어린왕자 뿐이 아니니까.

"어린 왕자는 뱀에 물려 죽었어."

중학교 때 내가 알았던 진실이란 그런 것이었다. 비웃음으로 답하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내 얼굴은 기억해도 이름을 기억하진 못했다. 아마 '어린 왕자의 죽음'도 잊었을 거였다. 그런 건 잊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친구는 자라는 사람이었다. 내게 어리다고 말한 친구도 자라는 사람이다. 나는 자라는 사람이 아니다. 내 돌아오는 길이 아픈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봉사하는 삶이나, 부자가 되기 위해 목숨거는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다. 나는 아직도 이기적이지 않다.


잘 소비하는 습관 덕분에
한 팔을 잘라 내고 명품 손을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게 되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예전의 삶을 비울 것이다.
그 곳에 내가 아닌 것들이 들어찰 때까지만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단단해진다.
겨울 새벽에 밟고 가는 눈길처럼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안고,
내내 깎여나간다.
그렇게 조금씩 깎이다 깎이다
해토머리 모두 가벼워질 때,
지난 추운 날숨들 품고
한때 파랗게 언 미소를 지었던 것만
기억하며 녹아져 갈 것이다.

단단한 땅 위에 발 딛고 자라나는 것들 사이에서,
내가 말하다 만 이야기들을 둘러본다.
그 중에는 혼자 썼다가 지워 버린 인생도 몇 개나 있다.
그냥 빈 종이였으면 좋았을걸, 하다가도
검게 망쳐버린 것들을 다시 비워내는 것도 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불합리한 공기를 떠다니며, 마시며, 비워내며.

청결하지 못한 시간을 뒤쫓아왔다.
하늘이 담배냄새처럼 노랗다.
가을은 중얼대며 모르는 척 지나간다.
나는 마지막 남은 온기를 여몄지만,
저 멀리 걸어가는 빗방울들의 발자국 소리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남겨 놓은 작은 구름 하나
저 위에서 녹아 들고 있었다.

죽는 것은 과정이다
야근이 힘들어서 죽었고,
주량 넘치게 술을 먹다 죽었고,
그렇게 우리는 수없이 죽음을 빚지다,
언젠가는 숨도 엷어지고,
너를 바라볼 눈빛도 흐려져서는
몇 개의 약력만으로 살아가는 어느 시인이 될 것이다.

외로움은 사건이다.
수만 개의 페이스북이 외로움을 도용하고,
수만 개의 핸드폰이 외로움을 실어나르고,
그래도 밤마다 모텔들은 교회 십자가처럼 번쩍이더라.
외로움은 살아 있다는 쉼표다.
우리는 서로 죽음 한가운데서 뒹굴다가,
다시 태어난 아침으로 빚을 갚아서는,
얼굴에 주름의 약력을 더하고
건강한 우리의 이야기도 쓸 것이다.

살다보면, 길에서나
사람들이 주고받는 몇 개의 이야기를 들이마신다.
아무 뜻도 아닌 냄새.

단어 하나로도 나는 배가 불렀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못 하는 것이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읽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필요한 건 마침표 하나다.

기웃거리다 들른 까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읽고 간다.
그게 오히려 나았다.

시 말이야 시,
시발에서 뒷 글자를 떼면 시라고 시.
그러니까 시는 발이 없어.
발이 없으니까 아무데도 못 가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도 없다니까.

그게 바로 나.
오래된 잡지 같은 나.
자유분방하고 매력 넘치는 기자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뉴요커 스타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공무원처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칼퇴할 때까지
바보에는 어느 조사가 어울리는지
재미도 뭣도 없는 미팅을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사서는
쪼그라든 방광을 채우고 그리고 들어간 집에서
밤마다 섹스 판타지로 칼럼을 쓰지만,
어차피 단 한 명의 독자도 없어서 쓸모가 없는
그런 잡지 말이야.

내 기억에 너는 아름다운 잡지였다.
누구든 너를 읽고 싶어 했어. 그래서,
너는 방문 판매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지.
내 잡지는 말이야.
쪼글쪼글한 피부에 파운데이션을 흠뻑 칠한
집사님 같은 아줌마들이 집마다 찾아간단다.
(그래도 자기들은 처녀라고 우겼지 아마?)
초인종을 눌러서는,
뭣도 모르고 문을 열어 준 병신들에게 뜯어낸
그 월급으로 내 빈약한 망상을
다음 호에도 실을 수 있다고.

다음 호에도 나는 시를 실을 거야.
맞아. 바로 그 발 없는 시
나는 내 시에 발을 선물하고 싶어.
시발 시발
욕이나 실컷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