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이의 부고가 이토록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올해에는 벌써 두 번째. 눈물도 조금 흘렀다. 나약해졌다. 그것보다는 내 주변을 좀 더 사랑해야 할 텐데.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짐을 져야겠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등과 허리가 많이 무겁다. 그저 나만 위할 뿐인 이기적인 욕심이다.

확실히 나약해졌다. 이건 아니다.

내려놓고 싶다. 머리 위의 무거운 하늘. 두 팔로 감겨드는 끈적이는 바람을 벗어던지고 싶다. 잠시 쉬고 싶다. 충분히 긴 시간이 생각의 통로를 비워내고 멋진, 행복한, 기쁜 것들로 다시 채울 수 있도록.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욕심도 별로 없다. 다만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눈썹 찡그리는 걸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믿었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괜히 기대해서 실망만 했다.

한 달 정도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웅크려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근데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안되니까 글을 쓰는 거다. 되는 거면 그냥 했겠지.


블로그 조회수가 높은 이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유입 키워드나 어떤 것을 봐도 짐작할 것이 없는데 다만 생각한 것은 GS25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나면 '본격 블로그 조회수만 올리는 PPL 쩌는 글'을 써볼 생각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다.

일요일이지만 일이 있어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강 때우려고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작은 상가건물의 구석에 딸린 조그만 편의점이었다. 서너 명 들어가면 북적북적대고, 서가처럼 높이 세운 냉장대에 꼬박꼬박 물건들이 쌓여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꼬질꼬질한 아이들 셋이 입구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구를 통과하기가 힘들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어떻게든 들어가서 내가 먹을 햄버거와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골랐다. 고르고 있자니 아이들이 들어와서 이제는 열개들이 요구르트를 꺼내려고 한다. 손이 닿지 않는데도 여러 번 휘적대니 결국은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내가 꺼내줄까? 여깄다."

"고맙습니다."

고마워하는 아이 말고 그 중에 그나마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가 연신 액수를 부르고 있는 걸로 봐서 물주인 것 같았다. 요구르트로 끝나지 않았는지 이젠 초코에몽을 먹고 싶다고 한다. 요구르트 옆에 있어서 역시 손이 닿지 않았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한 번만 더 도와주면 결국 얘네들의 수발을 끝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넌 초코에몽. 그리고 너도 초코에몽이야?"

"네"

"그럼 넌 딸기니?"

"저도 초코."

결국 초코에몽 세 개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여자아이의 고맙습니다까지 듣고 나서 난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하고 있자니 이제 고를 건 다 골랐는지 아이들도 계산대로 다가온다. 나는 '내가 너네들을 도와 주었으니 이번엔 내가 먼저 계산해야겠다'는 요지로 개드립을 날렸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물론 계산은 내가 먼저 했다. 내가 더 힘이 세니까.)

"돌리는 건 어디 있어요?"

"밖에 있어요."

계산을 끝내고 그 자리에서 때울 요량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먹을 만한 곳이 있기는 한데 계산대 바로 옆에 공학수학 책과 공부하던 노트가 펼쳐져 있는 걸로 보아 알바생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단 나는 한 켠에 음료수를 내려 놓고 밖으로 나갔다.

다 돌리고 들어오니 왠일인지 노트와 책이 치워져 있다. '센스있는 양반이군' 속으로 생각하며 일용할 양식을 막 향유하려는 순간

"아저씨 라면 좀 해주세요."

아까 그 녀석이다. 분명 컵라면을 결제하는 건 본 적이 없었는데. 참깨라면이다.

"너네 셋이 라면 하나 먹을거야?"

"네"

고개를 한번 젓고 나서 난 끝까지 천사가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먼저 캡을 반쯤 제거했다. 젠장 스프가 바닥에 깔려 있다. 내 생각에 스프가 바닥에 깔려 있는 건 최소한 십년 동안은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기이한 일이다.

스프를 뜯으려고 하니 아이가 혼잣말로 '매우니까 반쯤 넣어야지' 이런다. 스프 봉지를 건네주고 알아서 넣으라고 했다.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말이다. 시킬 것도 없이 아이는 스프를 취향대로 넣고 계란 블럭까지 툭 집어 넣는다. 숙련된 솜씨다. 왜 나한테 해달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추기름도 매운데 넣지 말까?"

나는 고분고분 고객의 취향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대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들어 있는 제품은 꼭 넣어야 한다는 확고한 뜻을 보여주었다.

"이건 흘릴 수 있으니까 아저씨가 뜯어줄게. 넣는 건 너가 알아서 넣어."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했다.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점이다.

"뜨거운 물은 위험하니까 이것도 아저씨가 넣어줄께. 물 다 넣으면 위험하니까 조심히 가져가서 먹어. 알았지?"

손님은 왕이다. 그 중에 아이는 더 왕이다. 끝까지 모셔야만 한다. 세 아이는 흡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건 편의점 알바가 해야 할 일인데 내가 해 주었다. 알바를 보니 별로 고맙지도 않은 얼굴이다. 그럴 수 밖에. 나는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싶어 삼각김밥과 햄버거를 음료수와 함께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차. 글을 쓰다 보니 잊은 게 있었다. 내가 따로 집은 음료수(초코라떼) 말고 햄버거에는 행사상품이 붙어 있어 파인애플맛 탄산음료(미안한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를 받아 왔었다. 지금 말하는 음료수라 함은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것저것 막 시켜서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는 알바 대신 이것저것 막 하느라고 이 중요한 정보를 잊고 적지 못했다. 젠장

먹을 거 다 먹고 있는데 알바생에게 전화가 온다.

자세한 걸 적으면 사생활치매라 적을 수는 없겠고,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건 아니고 편의점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들은 건데 어쨌든지간에 내용이 가족 중의 누가 많이 어려운 것 같았다. 아주 많이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런데 아주 태연하게 받는 것 같았다.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그래서 많이 놀랐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내색하면 졸라 웃긴 일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편의점 손님이 편의점 알바의 가정사에 내색을 하다니. 미친 짓이 따로 없다.)

그러고 나서 나는 편의점을 나섰다. 알바생은 다음 타임 알바생에게 조금 일찍 나올 수 없겠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겼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오는 내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뭐가 감사한지는 나도 모른다. 하마터면 내 손에 쥐여 있는 초콜릿라떼를 힘내라고 두고 나올 뻔했다.

길에서 초콜릿라떼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유연석과 이름을 모르는 아가씨가 광고하는 매일유업 초콜릿라떼는 천연 아프리카 가나 초콜릿을 원료로 아주 맛이 진하다. 초콜릿의 진한 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정말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가격은 1,600원이고 GS25에서 1+1인지 2+1인지 아무튼 행사 하고 있다. 이상.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데, 그저 도망만 가서는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겼으나 내가 내 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데도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별로 마음에도 들지 않고, 특히 밤에는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누군가 나를 노비라고 불렀고, 나도 나 자신을 가끔 노비라고 칭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과연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도 들었고, 자유롭다고 해서 무엇이 더 낫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는 한다. 어렸을 때 졸업한 이런 의문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퇴행의 증거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성장과 퇴행을 거듭한다. 내가 좀 퇴행한다고 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말란 법도 없고, 결국은 거대한 퇴행과 함께 영원히 퇴장해야 할 날도 올 것이다. 그러니까 퇴행에 익숙해지자. 퇴행에 묵묵히 견디는 정신이야말로 어른의 덕목이다.

나는 강하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는 한편, 나는 옳다라는 확신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실은 나는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옳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싫다. 강하면서 옳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TV를 보다가 교황의 강하고 옳음에 감동받았다. 교황님처럼 되고 싶다.

쓰지 않았다.

지금도 왜 쓰는지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다. 나는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삶은 써도 써도 빈 공책처럼 많은 여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빈 공책을 좋아한다. 빈 공책은 왠지 아름다운 문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날이 남아있는 옆선과 반쯤 구부린 상태에서 불에 비추었을 때의 매끄러운 음영도 사랑한다.

나도 스스로를 빈 공책과 같이 아름답게 여기던 때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잔뜩 내용을 적어놓아 마치 새로운 문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낡아버렸다. 이왕 낡았으면 응당 보관할 가치가 있는 공책이어야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쓰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더 보관할 가치 없는 공책이 된다면 누구인들 쓰고 싶겠는가.

캘리그라피를 독학하면서 강하게 느꼈는데, 목적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목적지가 멀 때더라. 무슨 공부든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보니 아무 생각 없이 파고들게 되고 당연한 실패에 대해서는 의미를 두지 않게 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흘려보냈던 많은 실패들을 다시 곱씹고 성공으로 재조정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보게 된다. 왜냐면 그게 더 어렵거든. 그리고 이 실패는 처음에 했던 것보다 훨씬 뼈아프다.

왜냐면 기술을 습득하는 것 외에 의미를 덧입히는 더 어려운 숙제를 떠앉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붓을 놀리고 펜을 다루는 기술은 종이를 한장 쓸 걸 두장 쓰고, 두장 쓸 걸 세장 쓰면 그만이라서 내 재능이 닿으면 다행히 기술이 늘어나는 것이고, 아니면 노력으로라도 닿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의미는 그렇게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뼛속까지 아픈 고민을 통해 나 자신 속의 나와의 벽을 부숴버린 뒤에야 찾아지는 것이다. 어렵지 않을 까닭이 없다.


늦은 밤에 편의점을 들렀다. 머리가 갑자기 어지러워져 시원한 걸로 목을 축이고 싶어서였다. 유흥가 근처라서 사람이 많았다. 사모님으로 보이는 아줌마 한 명이 바닥을 닦으랴 계산을 하랴 정신이 없었는데, 들어서는 나를 곁눈질로 노려보면서 "어서오세요."라는 말을 가까스로 씹어뱉었다. 정말로 어서 오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눈치껏 어서 꺼졌으면 좋겠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료수 하나 집어들고 계산을 하고 나니 이번엔 감사하단다. 그 감사를 거스름돈처럼 받아들고 밖을 나섰다. 어째 머릿속에 구겨넣은 스트레스가 더 구겨지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 내 블로그에 들어와서 수고스럽게 로그인을 한 다음 "바쁘다"라는 글을 타자로 치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여유는 있다. 아. 물론 다음에는 설정을 공개로 변경한 다음 저장 버튼을 클릭할 것이다. 아직은 못하지. 그러면 나는 이 글을 그만 써야 할 테니까.

사실은 이 말을 쓰려고 했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내가 부족하고, 내가 하는 행동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정도로만 완벽하다. 그럼에도, 나의 선택과 나의 행동은 '나는 완벽하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나는 그것이 부족하고 잘못된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선에서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난 부족하면서 완벽한 인간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그렇게 이해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그 이해 속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무도 사는 게 전쟁이라는 걸 말해 주지 않았다. 그건 누가 알려 줘서 깨달을 성질의 정보도 아니었다. 조금 늦게 안 사람과 그보다는 일찍 안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뭐, 사람들은 이미 이천 년 전부터 전쟁 중이었다. 내가 알기로 단 한 번도 그 전쟁은 끝이 난 적이 없었다.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었는데, 처음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또 다른 형태의 전장에 있었던 까닭으로 그 전쟁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읽어보니, 짧게 동강난 듯하면서도 눅진하게 늘어진 김훈의 수사가 예전보다 불편해진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나이가 든 탓이리라.(책을 워낙 읽지 않다보니, 한 번의 독서로도 글투가 닮게 된다.)

근래는 독서는 물론이요, 머리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일이란 게 머리 없이는 결코 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날마다 해야 할 일을 살피고, 어긋나지 않게 조금씩 처리하는 것이 두뇌 활동의 전부라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은 두뇌의 주름이 아니라 얼굴의 주름만 더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얼굴의 주름을 더하고 두뇌의 주름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고 느낀다.

예전만한 의욕이 없다. 의욕이 되살아나기 위해 잠시 밑바닥을 탐사하는 것도 더 이상 하기가 싫다. 그나마 블로그에 중2병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겠다.

요즘 재미를 붙여 다니고 있는 산행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대중 교통을 타고 서울 근교의 산을 다니다 보면 새벽에 일찍 산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을 느낍니다. 대체로 연세가 있으신 어른들이 많지만서도 가끔 젊은 연인들도 보입니다.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들에게서 불륜(
?)의 향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오 늘 갈 산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명지산(明智山)입니다. 이름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산행 코스가 제법 길어 새벽길을 떠났습니다.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가평역으로 1시간 정도 간 다음,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시점인 익근리를 향해 40분 정도 가면 됩니다.

터미널 앞에서 아침식사를 했는데, 급하게 먹고 시골길을 40분간 달린 까닭인지 멀미와 함께 급체가 왔습니다. 야속하게도 버스 기사 아저씨의 운전 솜씨는 서울의 총알버스 뺨때리게 거칠더군요. 동행하신 분의 증언에 따르면 안 그래도 하얀 제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고 하더군요. 산행에 앞서 급격한 컨디션 저하로 포기까지 고민한 순간이었습니다.

늦은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에도 아직 진달래가 많이 피었네요. 자세히 안 봤는데 철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쭉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승천사 입구가 저희를 반겨 줍니다. 명지산의 이름이 '明智'임을 안 것도 여기에서였습니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산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런지 오늘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사람 대신 살모사가 저희를 반겨 줍니다. ㅋㅋ(사진이 잘 나왔네요.)

여기까지만 해도 평탄하던 길이 제1봉을 1.5km 정도 앞두고 쉼없이 경사가 나타납니다.

올라가면서 이 산이 내게 주는 지혜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깨달음보다는 오만 잡생각이 다 납니다. 하늘도 맑고 볕도 따뜻한데 바람이 제법 찹니다. 그래서인지 걷는 걸음이 더욱 상쾌합니다.

드디어 정상인 명지1봉에 올랐습니다. 장관이네요.

정상석을 보면 '가평'이라고 쓰인 글자가 어색합니다. 다른 블로그에서 본 정상석과 달라서 누군가 덧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했는지 미적으로 센스가 꽝인 인간이네요.

마지막으로 2봉에서 한 컷.

명지3봉에서 애재비고개로 내려와서 연인산으로도 갈까 했지만 시간상으로 늦어서 백둔리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관계로 사진을 찍진 못했네요.

올라가는 길이나 내려가는 길이나 사람이 드물어 탁 트인 느낌을 받는 산행이었습니다.

오늘의 깨달음: 산 타기 전에 식사는 간단히.


말투가 단정적이고 보다 거칠어졌으며 비관적이다는 평을 들었다.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는 일이라 오히려 있는 그대로 말해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늘 생각하고 있던 나의 고쳐야 할 점이 다른 아이의 입에서 나를 향해 문자화되었다는 것이 다소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 아니하여도 요즘 나는 나 자신을 자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법으로 나를 변화시키기를 원하면서 노력하고 있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행복한 삶이란 뭘까? 지금이 힘들고 괴로워서가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바라마지않는 그 행복이라는 것의 실체가 나에게는 언제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성공도 골인지점도 없는 인생에서 실은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나도 그렇게 믿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1.
친구와 달빛을 마시며 바람 불던 날을 이야기했다.
세월이 내 몸에 새겨 준 결들을 낱낱이 세어 보였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도, 내가 맞는 바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그걸 이야기했고, 그래서 실은 계속 외로웠다.

2.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늘 보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점점 흐려지더니, 그림자도 걷어가 버리고 자리만 남아 있었다.
옆에서 잡화를 파시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볼까 했으나 관두었다.
그 흔적조차 기억하지 않게 될 때까지, 그녀는 살아 있을 터.
등긁개 하나 사주지 못하는 길손이 취할 예는 아니었을 것이다.

몇 가지 글감이 머릿속을 돌아다니다가 사라져 버렸는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글쓰기의 자세가 조금은 돌아온 것 같다. 꽤나 마음에 들었던 은유였는데 그것들은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해 무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어제는 오랫만에 밤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별이 하나 떠 있었다. 서울에서 별을 찾는 경험은 흔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별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
오랫만에 찾아온 기념으로 예전에 쓴 글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방명록에 들어갔다가 모르는 누군가의 댓글을 보고 놀랐다. 무려 내 글이 마음에 드신다니 기뻤다. 감사한 일이다. 요즘은 버릇처럼 감사를 느끼고 사는데,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일종의 가식처럼 여겨지더라도 내가 실제로 감사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감사하다.

2.
아무도 내가 힘들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거다. 하긴 나도 남이 힘든지 안 힘든지 별로 알고 싶지가 않으니, 내가 아무리 힘들다고 떠들어 봐야 나의 괴로움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설령 물어보더라도 그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만큼이나 반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의례적인 멘트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에 대해서 '안알랴줌'이라고 대꾸하는 일만큼 당연한 것도 없다.

3.
1번과 2번의 글으로 판단하건대 아마 이 글쓴이의 정신상태는 매우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나쁜 의미로써가 아니라, 뭐랄까 진동폭이 크다고 느껴질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어떤 stable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블로그에 예전에 쓴 글에서는 정도의 경향성이 있었으나, 한동안 그 경향성에서 조금 벗어나서 살다 보니 내 자신도 약간 희미해져 있다.

4.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기 전에, 아직 잘 모르는 삶에 대해 먼저 궁금해 하는 것이 낫다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동감한다. 삶은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죽음은 특정한 한 순간이 아니라 그 희미해짐이 멈춰서 더 이상 희미해질 것이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숨이 붙어 있어도 죽어 있는 사람이 있고, 살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서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에 텅 비어버린 방은 어디에 무엇을 놓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방에 많은 의미를 두던 때에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나의 세계는 방의 지평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좁다와 넓다를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짓지 않는 선에서 나는 넓어진 세계가 견디기 힘들 때마다 그 좁았던 시절의 구석구석을 더듬어 본다. 흐릿하게라도 기억났으면 좋겠다.

좁은 방은 온전한 나만의 것이다. 넓은 세계는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 통제력이란 것은 시공간의 각 지점에 부여한 확률이다. 나는 희뿌연 확률의 구름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예전의 좁은 방처럼 단단하게 구획된 100퍼센트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다.

글 하나를 쓰기가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어차피 머릿속에 있는 실타래를 잘 풀어서 몇 개의 문장으로 늘어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을 왜 나는 한 달이 넘게 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되어야겠다. 요즘 줄곧 하는 생각이다. 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딱 인간. 

글 쓰는 인간.

나는 깨어있는 동안에는 항상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끊임없는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고 있는 동안뿐이다. 사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니 내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 문제는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는 이 순간을 충분히 열심히 임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른바 "후회"라는 것은 바로 이로부터 연유하는 것일 테다.

요즘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단어는 '욕망'이다. 나를 거쳐 가는 다른 이들의 욕망이 버겁다. 때론 살짝, 때로는 무겁게 나를 가로지르는 욕망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욕망이 반드시 나의 행위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내가 무언가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나, '나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 주길 바라는 것'이나 똑같은 무게로 나를 숨막히게 한다. 내가 살아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관계의 무게다.

정리하면 나는 내 자신의 '진짜 욕망'과, 타인의 욕망으로 인해 내가 가져야 할 것으로 요구되는 '가짜 욕망'의 교집합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욕망과 욕망의 부딪힘으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불꽃이 나를 쓰라리게 태운다. 그 안에 분명히 진정한 무언가가 있을텐데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욕망을 위해서 사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 욕망에 충실하기만 해도, 나는 다른 사람의 욕망도 이해할 수가 있을 게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임하는 '연기'에 취해 있을 뿐이다. 나에게는 욕망이 별로 없다. 아마 나는 얼마간의 내일이 지난 뒤에 분명 후회하는 삶을, 그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한 채 살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예전에는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하면 읽을 가치가 있는 것과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을 명확히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에게는 세상에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 소중함을 아는 사람의 글은 어느 것이든 가치있다.

어린 아이가 한글을 배우다가 서툴게 쓴 '엄마'를 보았을 때 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슴 속에서 행복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을 느낀다. 순간일지언정 나는 그 행복에 잠시나마 따뜻해진다. '감동'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수백 페이지의 소설보다도 낫다.

나에게 좋은 글이란 쓰고 났을 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다. 다른 이들이 무엇이라 생각하든 내가 만족하는 글쓰기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 준다면 좋겠다. 내가 알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알아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글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나의 보람일 것이다.

외로워서 견딜 수 없다가도 외로움은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음. 영원히 이따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괴롭다. 잊어버리고 싶다. 나에 매달린 몇 개의 끈만 끊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요즘 자주 되뇌이는 말 중 하나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에서 사람은 나를 포함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동시에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존중하기 힘들다. 이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삶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24시간과 3600분으로 이루어진 하루의 모든 순간을 아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삶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삶은 내 뒤끝까지 쳐들어와 나를 툭툭 밀곤 했다. "어이 이봐. 뒤를 돌아보지 그래. 네가 흘리고 간 모든 것들을 보라구. 처음부터 흘리지 않았더라면 등 뒤에서 누가 잡는 일도 없었잖아." 꼭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 1년 365일을 매일같이 뛰어다니라는 뜻은 아닐 거다. 다만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허투루 흘리지 아니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만 끝까지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등 뒤에서 삶이 쫓아오는 느낌만큼은 가지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길도 없는 공간에서 바쁘게만 흘러다닌다.
처음보다 끝을 걱정하는 버릇 때문에 나는 끝이 먼저인지 나중인지 모르겠다.

내 옆에 누가 없어서 내가 너를 그리는지 내가 너를 그리기 때문에 내 옆에 누가 없는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르는 게 많아진다. 세상은 모르는 것투성이라는 것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게 바로 나이 먹는 것이라는 것만 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거나, 나 혼자 설 수 없어 기대고 싶은 마음에 쓰는 과장된 수사로써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의미로 힘이 든다. 무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체력과 정신력 모든 면에서 내가 가진 능력을 벗어나고 있다.

욕심이 과했거나, 혹은 길을 잘못 들었을 수 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해서 잠시 생각을 할 여유가 필요하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일주일 안에 몸은 위부터 아래까지 구석구석 망가지지 않은 곳이 없다. 여기서 흔들고 저기서 툭 치고 가는 통에 내 마음은 곤죽이 되었다. 울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이렇게 병들어 가며 걷는 길이다.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요즘 힘든 일이 많다. 나의 고민과 한강 중 어느 쪽이 길까 재 보았다. 감히 내 고민 따위를 한강과 비교하려고 한 것조차 교만이었다.

새해 첫 날의 다짐으로 "나는 언제나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다"라고 적었다. 내가 찾아간 곳에도 역시 진실은 없었다. 진실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진실보다는 화장실이 더 급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해야겠다. 바쁘다는 이유로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은, 바쁘다는 이유로 보고를 하지 않는 부하직원과 같다. 나는 내 자신의 상관으로써 나의 보고를 다시 받아야겠다.


김연아 메달, 코스트너 메달, 마오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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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는 지난 시즌인 2012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로써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LG 트윈스는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는 팀이 총 8팀의 반인 4팀이나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기록의 범상치 않음은 더욱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