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뒤집었다.

먼지가 날아와 산이 되었다.
가라앉은 하늘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를 팔아 변치 않는 사람으로부터
흔들리는 바람을 덮어버렸다.

봄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이 친구, 이제 막 나가자는 거지. 이걸 당장...(웃음)
지문으로 웃지 마십시오. 어색합니다.
연락은 곧 올 겁니다. 여름이
내일 스케줄을 잡아 놓았으니까요.

산이 날아와 길은 이미 만원이고,
교통비를 지불한 계절은 하루에 한 번씩
중앙선을 침범하고는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흔들리는 사람들이 마구 걸어다니다가,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나다.
손가락을 뻗어 마침표를 눌렀다.

마지막이라면 그렇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좋으니 봄이 봄다워지도록 무대 장치를 손보고, 복고풍의 의상도 그 나름의 멋을 풍기도록 갖추어 우리는 새로운 계절을 만끽하도록 하자. 그러고 나면 겨울도 그 다음도 제법 견딜만 할 것이다.

너를 본다.
너의 그림자를 본다.
2차원으로 배열된 너의 역사를 본다.
네가 걸어갔을 때 발자국마다 조금씩
그림자를 흘렸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너였다.

너를 본다.
그림자인 너를 본다.
3차원으로 배열된 그림자인 너를
시간이 흘러가며 흔들린 자리마다
그림자를 남겼다.
그게 바로 너다.

목적어 없는 문장이 마침표를 조금씩 밀어내면서 나아갔다.
그동안 쉼없이 써내려 간 것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낼 때마다 네가 떠올랐다.

왜 서른 네 살은 사랑을 할 수가 없나.
이 세상에는 지불해야 할 것이 많다. 내 젊은 시절에
너를 찾아다니며 사용했던 쉼표들 때문에
지금은 간결하게 살아야 한다.

길을 잃다.
처음부터 잃었다. 내가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만 내가 지금 "길을 잃다."라는 3연의 첫머리에 얹었을 뿐이다.
내가 너를 항상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너 없는 삶이 계속해서 간다.
이 문장이 계속 마침표를 밀어내며 나아가는 것처럼

*제목변경: 길을 잃다 -> 자문자답

단단해질 것

구체적으로 욕망을 디자인할 것. 그러니까, 막연하게 무엇이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목록으로 나열하고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항목끼리 잘 연결해서 최선의 길을 찾아놓아야 한다.(라고는 생각하는데 머리가 나빠서 조금 어렵기는 하다.) 일단 많은 길을 확보해 두는 것이 먼저다. 망설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리고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그 길을 가면 되는데, 선택은 언제나 판단이 동반되는 것임을 명심하라. 판단에는 명확한 근거를 설정하고 그 후로는 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무조건 가자. 다시 말하지만 나를 믿어라. 아직까지 나는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따라서 나는 귀납적으로 나를 신뢰하여야 한다.)

출발하기 전, 떠난 자리를 살펴볼 것. 분명 하나는 놓친 것이 있다.

그리고 가끔씩 우울해질 때는 어떻게 하나. 그건 잘 모르겠다. 독소처럼 우울하다.

봄바람 같다.
꿈이란 늘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라데이션
짙푸름에서 노랗게 날아오르는,
어제보다는 추워졌고, 내일보다는 따뜻한
봄바람 같은 아침.

기상이 쾌청하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마음부터 일어나게 된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시린 일이지만,
여름으로 달려나갈 달력을 보며
거울 속의 내 얼굴에 혈색을 채워넣어야 한다.

왜 사랑하지 않겠는가.
내 어린 시절이 좀더 푸른색이었다면
그게 봄이라 해도,
자라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봄바람 같다.
모든 것이 달려나간 자리를 보며,
모든 것이 비어버린,
봄이다.

시를 쓰고 싶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언제까지나 소망에 머무르고 있는 나의 시가 예정일을 훨씬 넘기고도 세상에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가끔 초음파로 나의 시를 바라본다. 그것들은 덜 여문 단어들과 흐릿한 문장들로 뒤척이고 있는 하나의 덩어리다. 가끔 하품을 하기도 하는데, 졸다가도 그 하품을 꿈에서 보곤 한다. 그래봤자 펜만 들면 사라져 버린다.

허니버터칩 같은 가공의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건 먹어봤다. 그리고 사실 허니버터칩을 먹어도 그렇게 맛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직 내 배가 아프다는 거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내 아이를 볼 수 있을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시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시를 쓰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를 쓰고 싶었던 것까지는 진실인데, 막상 시를 써놓고 그 시를 어떻게 다룰지는 생각은 안 해봤다. 고민 없는 불장난에 불과했다. 그건 내가 삶을 대하는 가벼운 태도와 똑같이 닮아있다.

여전히 배가 아프다. 그리고 계속 배가 아플 예정이다. 시를 쓰고 싶었다. 정말.



신세계를 재탕했다. 이유는, 일단 연결이 잘 되지 않았던 장면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읽기 위해서였고, 잔인해서 조금 대충 본 장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가 본 신세계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짚을 필요가 없는 곳이었고, 따라서 실망만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느와르는 그저 느와르일 뿐이다. 느와르에서 느껴지는 환상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삶의 부피만 얇아지는 기분이다.

그림 속에서 나올 줄 알았지.
많은 것들이, 내 앞으로 달려나와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

너의 웃음은 하얀 빛깔이었고,
나의 기다림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야기들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그림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
멈추었다.

물을 주지 않았는데 이파리가 누렇게 떴네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뜨거운 바람에 녹아버린 플라스틱임을 깨달았다.
요즘은 플라스틱도 사랑을 해요. 자라다가 멈추었다가 죽는답니다.
떨어진 이파리 몇 개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제 시간에서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남은 것들은 모두 페이드 아웃이다.
그림 속에 우리 모두의 환타지가 갇혀 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러면 화나지.
내일이면 나올 줄 알았지.
나는 또.

떠나지마세요.


다투어도 좋으니 미워하지 말라.

미워하던 사람의 주름살과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미움이 켜켜이 쌓인 당신 얼굴이 바로 내 마음이더라.

미워할수록 빨리 늙으시더라.

규칙을 지켜야 착한 사람이 되는 사회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사회와 현실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이 틈을 파고드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반드시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 착한 한줄평이지만, 스포일러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한줄평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좋은 한줄평을 쓸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므로, 착한 한줄평을 쓰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일부수정)

가만히 하루를 자른다.
1시 반이 2시 반이 될 때까지의 느낌으로,
잘라내서 무심코 버린다.

한때는 쓰레기통이 길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버려진 시간들을 모아서 봉투에 담아서
또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규칙적으로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 만든 탑이
공기처럼 사람들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2시 반이 3시 반이 될 때쯤
허리춤에 진동이 울리고 한 통의 죄책감이 배달된다.
또 다시 하나를 잘라내어 버렸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즘들어 콜라가 너무 맛있다.
이빨이 상할지도 모르니 좀 줄여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우유를 좀 사 왔어. 혹시 키가 더 자랄지도 모르잖아, 하고
작게 웃었다.
그 우유를 먹은 뒤에,
또 하나의 죄책감이 배달되어 왔다.
어제 뱃속에 버린 믹스커피가 이제 맹장에 도착했다고 진동을 보낸다.
그때서야 난 이제 맹장이 없다는 걸 깨닫지만,
뭐 좀 어떤가.

3시 반에서 4시 반이 되기 전에
정확히 세시 오십 삼분에 마지막 시간을 잘라내어 버리고
버스를 탔다.
하루종일 남은 것이라곤
이 글 밖에는 없다. 그래서 여기다 버린다.

초등학교 앞에서 한 아이와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헤어질 땐 인사해야지? 자 인사. 배꼽손."이라고 하며 인사를 가르치고 있었고 아이의 눈은 촛점이 없었다. 내가 어딜 잠시 다녀와서 몇 분 뒤 초등학교 앞을 또 지나는데, 여전히 인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는 따라할 마음도,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엄마는 웃고 있었고, 아이는 무표정했고, 나는 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태어나면서 찢은 것은 엄마 배만이 아니었다. 네 살이 되도록 말을 배우지 못하자, 엄마는 동네 형들을 모조리 초대해서 매일 놀았다고 했다. 그 때도 엄마는 웃고 있었고, 나는 무표정했고, 다른 누군가는 눈물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다른 곳을 마구 찢어 가면서 자라났다.

모르는 이의 부고가 이토록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올해에는 벌써 두 번째. 눈물도 조금 흘렀다. 나약해졌다. 그것보다는 내 주변을 좀 더 사랑해야 할 텐데.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짐을 져야겠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등과 허리가 많이 무겁다. 그저 나만 위할 뿐인 이기적인 욕심이다.

확실히 나약해졌다. 이건 아니다.

내려놓고 싶다. 머리 위의 무거운 하늘. 두 팔로 감겨드는 끈적이는 바람을 벗어던지고 싶다. 잠시 쉬고 싶다. 충분히 긴 시간이 생각의 통로를 비워내고 멋진, 행복한, 기쁜 것들로 다시 채울 수 있도록.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욕심도 별로 없다. 다만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눈썹 찡그리는 걸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믿었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괜히 기대해서 실망만 했다.

한 달 정도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웅크려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근데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안되니까 글을 쓰는 거다. 되는 거면 그냥 했겠지.


블로그 조회수가 높은 이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유입 키워드나 어떤 것을 봐도 짐작할 것이 없는데 다만 생각한 것은 GS25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나면 '본격 블로그 조회수만 올리는 PPL 쩌는 글'을 써볼 생각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다.

일요일이지만 일이 있어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강 때우려고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작은 상가건물의 구석에 딸린 조그만 편의점이었다. 서너 명 들어가면 북적북적대고, 서가처럼 높이 세운 냉장대에 꼬박꼬박 물건들이 쌓여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꼬질꼬질한 아이들 셋이 입구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구를 통과하기가 힘들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어떻게든 들어가서 내가 먹을 햄버거와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골랐다. 고르고 있자니 아이들이 들어와서 이제는 열개들이 요구르트를 꺼내려고 한다. 손이 닿지 않는데도 여러 번 휘적대니 결국은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내가 꺼내줄까? 여깄다."

"고맙습니다."

고마워하는 아이 말고 그 중에 그나마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가 연신 액수를 부르고 있는 걸로 봐서 물주인 것 같았다. 요구르트로 끝나지 않았는지 이젠 초코에몽을 먹고 싶다고 한다. 요구르트 옆에 있어서 역시 손이 닿지 않았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한 번만 더 도와주면 결국 얘네들의 수발을 끝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넌 초코에몽. 그리고 너도 초코에몽이야?"

"네"

"그럼 넌 딸기니?"

"저도 초코."

결국 초코에몽 세 개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여자아이의 고맙습니다까지 듣고 나서 난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하고 있자니 이제 고를 건 다 골랐는지 아이들도 계산대로 다가온다. 나는 '내가 너네들을 도와 주었으니 이번엔 내가 먼저 계산해야겠다'는 요지로 개드립을 날렸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물론 계산은 내가 먼저 했다. 내가 더 힘이 세니까.)

"돌리는 건 어디 있어요?"

"밖에 있어요."

계산을 끝내고 그 자리에서 때울 요량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먹을 만한 곳이 있기는 한데 계산대 바로 옆에 공학수학 책과 공부하던 노트가 펼쳐져 있는 걸로 보아 알바생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단 나는 한 켠에 음료수를 내려 놓고 밖으로 나갔다.

다 돌리고 들어오니 왠일인지 노트와 책이 치워져 있다. '센스있는 양반이군' 속으로 생각하며 일용할 양식을 막 향유하려는 순간

"아저씨 라면 좀 해주세요."

아까 그 녀석이다. 분명 컵라면을 결제하는 건 본 적이 없었는데. 참깨라면이다.

"너네 셋이 라면 하나 먹을거야?"

"네"

고개를 한번 젓고 나서 난 끝까지 천사가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먼저 캡을 반쯤 제거했다. 젠장 스프가 바닥에 깔려 있다. 내 생각에 스프가 바닥에 깔려 있는 건 최소한 십년 동안은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기이한 일이다.

스프를 뜯으려고 하니 아이가 혼잣말로 '매우니까 반쯤 넣어야지' 이런다. 스프 봉지를 건네주고 알아서 넣으라고 했다.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말이다. 시킬 것도 없이 아이는 스프를 취향대로 넣고 계란 블럭까지 툭 집어 넣는다. 숙련된 솜씨다. 왜 나한테 해달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추기름도 매운데 넣지 말까?"

나는 고분고분 고객의 취향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대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들어 있는 제품은 꼭 넣어야 한다는 확고한 뜻을 보여주었다.

"이건 흘릴 수 있으니까 아저씨가 뜯어줄게. 넣는 건 너가 알아서 넣어."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했다.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점이다.

"뜨거운 물은 위험하니까 이것도 아저씨가 넣어줄께. 물 다 넣으면 위험하니까 조심히 가져가서 먹어. 알았지?"

손님은 왕이다. 그 중에 아이는 더 왕이다. 끝까지 모셔야만 한다. 세 아이는 흡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건 편의점 알바가 해야 할 일인데 내가 해 주었다. 알바를 보니 별로 고맙지도 않은 얼굴이다. 그럴 수 밖에. 나는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싶어 삼각김밥과 햄버거를 음료수와 함께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차. 글을 쓰다 보니 잊은 게 있었다. 내가 따로 집은 음료수(초코라떼) 말고 햄버거에는 행사상품이 붙어 있어 파인애플맛 탄산음료(미안한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를 받아 왔었다. 지금 말하는 음료수라 함은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것저것 막 시켜서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는 알바 대신 이것저것 막 하느라고 이 중요한 정보를 잊고 적지 못했다. 젠장

먹을 거 다 먹고 있는데 알바생에게 전화가 온다.

자세한 걸 적으면 사생활치매라 적을 수는 없겠고,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건 아니고 편의점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들은 건데 어쨌든지간에 내용이 가족 중의 누가 많이 어려운 것 같았다. 아주 많이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런데 아주 태연하게 받는 것 같았다.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그래서 많이 놀랐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내색하면 졸라 웃긴 일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편의점 손님이 편의점 알바의 가정사에 내색을 하다니. 미친 짓이 따로 없다.)

그러고 나서 나는 편의점을 나섰다. 알바생은 다음 타임 알바생에게 조금 일찍 나올 수 없겠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겼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오는 내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뭐가 감사한지는 나도 모른다. 하마터면 내 손에 쥐여 있는 초콜릿라떼를 힘내라고 두고 나올 뻔했다.

길에서 초콜릿라떼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유연석과 이름을 모르는 아가씨가 광고하는 매일유업 초콜릿라떼는 천연 아프리카 가나 초콜릿을 원료로 아주 맛이 진하다. 초콜릿의 진한 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정말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가격은 1,600원이고 GS25에서 1+1인지 2+1인지 아무튼 행사 하고 있다. 이상.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데, 그저 도망만 가서는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겼으나 내가 내 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데도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별로 마음에도 들지 않고, 특히 밤에는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누군가 나를 노비라고 불렀고, 나도 나 자신을 가끔 노비라고 칭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과연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도 들었고, 자유롭다고 해서 무엇이 더 낫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는 한다. 어렸을 때 졸업한 이런 의문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퇴행의 증거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성장과 퇴행을 거듭한다. 내가 좀 퇴행한다고 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말란 법도 없고, 결국은 거대한 퇴행과 함께 영원히 퇴장해야 할 날도 올 것이다. 그러니까 퇴행에 익숙해지자. 퇴행에 묵묵히 견디는 정신이야말로 어른의 덕목이다.

나는 강하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는 한편, 나는 옳다라는 확신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실은 나는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옳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싫다. 강하면서 옳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TV를 보다가 교황의 강하고 옳음에 감동받았다. 교황님처럼 되고 싶다.

쓰지 않았다.

지금도 왜 쓰는지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다. 나는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삶은 써도 써도 빈 공책처럼 많은 여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빈 공책을 좋아한다. 빈 공책은 왠지 아름다운 문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날이 남아있는 옆선과 반쯤 구부린 상태에서 불에 비추었을 때의 매끄러운 음영도 사랑한다.

나도 스스로를 빈 공책과 같이 아름답게 여기던 때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잔뜩 내용을 적어놓아 마치 새로운 문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낡아버렸다. 이왕 낡았으면 응당 보관할 가치가 있는 공책이어야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쓰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더 보관할 가치 없는 공책이 된다면 누구인들 쓰고 싶겠는가.

나무 사진에 폰트작업. 무료 폰트중 가장 인기있다는 Myriad Pro 다루는 연습.


캘리그라피를 독학하면서 강하게 느꼈는데, 목적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목적지가 멀 때더라. 무슨 공부든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보니 아무 생각 없이 파고들게 되고 당연한 실패에 대해서는 의미를 두지 않게 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흘려보냈던 많은 실패들을 다시 곱씹고 성공으로 재조정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보게 된다. 왜냐면 그게 더 어렵거든. 그리고 이 실패는 처음에 했던 것보다 훨씬 뼈아프다.

왜냐면 기술을 습득하는 것 외에 의미를 덧입히는 더 어려운 숙제를 떠앉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붓을 놀리고 펜을 다루는 기술은 종이를 한장 쓸 걸 두장 쓰고, 두장 쓸 걸 세장 쓰면 그만이라서 내 재능이 닿으면 다행히 기술이 늘어나는 것이고, 아니면 노력으로라도 닿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의미는 그렇게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뼛속까지 아픈 고민을 통해 나 자신 속의 나와의 벽을 부숴버린 뒤에야 찾아지는 것이다. 어렵지 않을 까닭이 없다.


늦은 밤에 편의점을 들렀다. 머리가 갑자기 어지러워져 시원한 걸로 목을 축이고 싶어서였다. 유흥가 근처라서 사람이 많았다. 사모님으로 보이는 아줌마 한 명이 바닥을 닦으랴 계산을 하랴 정신이 없었는데, 들어서는 나를 곁눈질로 노려보면서 "어서오세요."라는 말을 가까스로 씹어뱉었다. 정말로 어서 오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눈치껏 어서 꺼졌으면 좋겠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료수 하나 집어들고 계산을 하고 나니 이번엔 감사하단다. 그 감사를 거스름돈처럼 받아들고 밖을 나섰다. 어째 머릿속에 구겨넣은 스트레스가 더 구겨지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 내 블로그에 들어와서 수고스럽게 로그인을 한 다음 "바쁘다"라는 글을 타자로 치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여유는 있다. 아. 물론 다음에는 설정을 공개로 변경한 다음 저장 버튼을 클릭할 것이다. 아직은 못하지. 그러면 나는 이 글을 그만 써야 할 테니까.

사실은 이 말을 쓰려고 했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내가 부족하고, 내가 하는 행동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정도로만 완벽하다. 그럼에도, 나의 선택과 나의 행동은 '나는 완벽하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나는 그것이 부족하고 잘못된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선에서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난 부족하면서 완벽한 인간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그렇게 이해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그 이해 속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무도 사는 게 전쟁이라는 걸 말해 주지 않았다. 그건 누가 알려 줘서 깨달을 성질의 정보도 아니었다. 조금 늦게 안 사람과 그보다는 일찍 안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뭐, 사람들은 이미 이천 년 전부터 전쟁 중이었다. 내가 알기로 단 한 번도 그 전쟁은 끝이 난 적이 없었다.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었는데, 처음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또 다른 형태의 전장에 있었던 까닭으로 그 전쟁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읽어보니, 짧게 동강난 듯하면서도 눅진하게 늘어진 김훈의 수사가 예전보다 불편해진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나이가 든 탓이리라.(책을 워낙 읽지 않다보니, 한 번의 독서로도 글투가 닮게 된다.)

근래는 독서는 물론이요, 머리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일이란 게 머리 없이는 결코 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날마다 해야 할 일을 살피고, 어긋나지 않게 조금씩 처리하는 것이 두뇌 활동의 전부라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은 두뇌의 주름이 아니라 얼굴의 주름만 더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얼굴의 주름을 더하고 두뇌의 주름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고 느낀다.

예전만한 의욕이 없다. 의욕이 되살아나기 위해 잠시 밑바닥을 탐사하는 것도 더 이상 하기가 싫다. 그나마 블로그에 중2병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겠다.


갈필 연습


친구녀석이 써 달라고 했던 메세지. 많이 힘들 때 떠올리면 위안이 된다. 내 위치가 의심스러울 때, 그리고 삶이 팍팍해서 놓고 싶을 때가 많다. 나잇값 사람값 하느라고 그러질 못해서 그렇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감정일 것이다.

첫 행은 마음에 들고(강약조절이 적절함), 둘째 행은 그럭저럭이고, 셋째 행은 버리고 다시 쓰고 싶다(우사경).


산도 산이지만 여름은 바다의 계절!

함박웃음. 맛있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을 때 나오는 웃음!

너랑 나랑~

요즘 재미를 붙여 다니고 있는 산행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대중 교통을 타고 서울 근교의 산을 다니다 보면 새벽에 일찍 산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을 느낍니다. 대체로 연세가 있으신 어른들이 많지만서도 가끔 젊은 연인들도 보입니다.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들에게서 불륜(
?)의 향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오 늘 갈 산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명지산(明智山)입니다. 이름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산행 코스가 제법 길어 새벽길을 떠났습니다.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가평역으로 1시간 정도 간 다음,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시점인 익근리를 향해 40분 정도 가면 됩니다.

터미널 앞에서 아침식사를 했는데, 급하게 먹고 시골길을 40분간 달린 까닭인지 멀미와 함께 급체가 왔습니다. 야속하게도 버스 기사 아저씨의 운전 솜씨는 서울의 총알버스 뺨때리게 거칠더군요. 동행하신 분의 증언에 따르면 안 그래도 하얀 제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고 하더군요. 산행에 앞서 급격한 컨디션 저하로 포기까지 고민한 순간이었습니다.

늦은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에도 아직 진달래가 많이 피었네요. 자세히 안 봤는데 철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쭉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승천사 입구가 저희를 반겨 줍니다. 명지산의 이름이 '明智'임을 안 것도 여기에서였습니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산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런지 오늘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사람 대신 살모사가 저희를 반겨 줍니다. ㅋㅋ(사진이 잘 나왔네요.)

여기까지만 해도 평탄하던 길이 제1봉을 1.5km 정도 앞두고 쉼없이 경사가 나타납니다.

올라가면서 이 산이 내게 주는 지혜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깨달음보다는 오만 잡생각이 다 납니다. 하늘도 맑고 볕도 따뜻한데 바람이 제법 찹니다. 그래서인지 걷는 걸음이 더욱 상쾌합니다.

드디어 정상인 명지1봉에 올랐습니다. 장관이네요.

정상석을 보면 '가평'이라고 쓰인 글자가 어색합니다. 다른 블로그에서 본 정상석과 달라서 누군가 덧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했는지 미적으로 센스가 꽝인 인간이네요.

마지막으로 2봉에서 한 컷.

명지3봉에서 애재비고개로 내려와서 연인산으로도 갈까 했지만 시간상으로 늦어서 백둔리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관계로 사진을 찍진 못했네요.

올라가는 길이나 내려가는 길이나 사람이 드물어 탁 트인 느낌을 받는 산행이었습니다.

오늘의 깨달음: 산 타기 전에 식사는 간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