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을 써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잖아요. 이젠 좀 쓸 때도 되시지 않았나 싶은데요."

  수화기를 통해서 담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껏 낮춘 목소리가 아무래도 여러 차례 참아온 불만을 털어놓는 낌새다.

  "그건 저도 몇 번이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재미있다고 보낸 글..."

  "그럼 선생님이 재미있는 글이 재미있는 글이 아니라고 했던 것도 기억하시겠군요.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시다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급하게 잘라 들어온다. 이 친구는 변명을 상당히 싫어하는 친구다. 이쯤해서 장단을 맞추어 줄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만' 재미있는 글이라고 말하셨었죠."

  "잘 아시네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실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쯤해서 겸연쩍게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일랑 마시죠. 전 대비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서둘러 준비했던 너털웃음을 꿀꺽 삼키고 좀 더 대화를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푹신한 쿠션에 기대었던 등을 반쯤 일으켜 세운다. 이 푹신한 쿠션은 아내가 사 준 일본 애니메이션 '토토로' 캐릭터가 그려진 것이다. 한쪽 눈 부분에 국물을 흘려 색깔이 변해 있기는 하지만 쿠션으로서의 기능은 그대로다. 아내가 본다면 기겁을 하겠지만, 나는 도대체 이 쿠션을 어떻게 세탁을 할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선생님, 침묵도 소용 없답니다."

  담당은 쿠션 생각으로 잠시 멀어졌던 나의 의식을 붙들어매는 뾰족한 목소리로 일침을 가했다. (일침을 가했다는 표현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야말로 바느질 한 땀으로 두 사람 사이의 멀어진 의식을 기운단 이야기 아닌가.)

  "삼 주 전에 '달빛 구루마'는 반응이 꽤 좋았어요. 그런 쪽으로 좀 더 신비로우면서도 독자들의 감성을 1차적으로 건드리는 직선적인 글을 써 주길 바랍니다. 독자들의 수준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마세요. 글을 대하는 태도에서 모두가 선생님 같지는 않답니다."

  '달빛 구루마'는 달빛을 거래하는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은행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시골 분교에서 영화 상영회를 할 때 조명이 갑자기 꺼지자 우여곡절 끝에 고객들의 달빛을 전부 인출해서 성황리에 상영회를 마치게 해 주었다는 신파극 같은 동화 이야기였다.

  "게다가 선생님답지 않게 그때는 해피엔딩까지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었답니다. 아무튼..."

  담당은 말을 계속 할 모양이다. 사실 그가 원하는 글이라는 것이 뻔하디 뻔한 것이어서 나는 지금까지 들어준 것만 해도 인내심을 많이 발휘한 셈이었는데도 아직 성이 덜 찼나보다. 이러다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SNS를 안하시는 이유'를 끄집어내서 소통과 협업의 트렌드까지 끌고 나오면서 진절머리나는 설교로 이어질 것 같다.

  "재미있는 글을 쓸게요. 물론 내가 아닌 독자들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글 말이지요. 드라마보다 막장이고, 예능프로그램보다 자극적이고, 유재석보다 더 너그러운 글, 그래 쓸게요."

  언제는 백기를 안 들었냐만은 오늘도 백기를 들지 않고서는 전화를 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말은 안 하지만 흡족한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받았다.

  "네, 말씀 잘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번 주도 마감은 꼭 제대로 지켜 주시구요. 제가 일부러 선생님 괴롭히려고 전화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죠."

  '다 선생님 다 잘되라고 하시는 말이에요.'가 나올 순서인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말끝을 나꿔챘다.

  "저도 다 알아요. 저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인줄... 요즘 독자들이 보통 독자들이 아니잖아요. 저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주세요."

  "모를 리가요. 선생님. 모르지 않아요. 다 알고 있어요."

   "그걸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금요일 마감을 지키려면 슬슬 다시 키보드를 잡아야겠습니다. 담당 선생님도 퇴근하실 시간이시네요. 얼른 일 끝내고 들어가 보셔야죠."

   "퇴근, 참 팔자 좋은 말씀 하시네요." 하고 그녀는 살짝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말씀은 감사합니다. 마감은 꼭 부탁드려요. 금요일 오전 12시까지. 글 완료가 아니라 전송 완료까지."

   나는 왼손에 든 집전화의 종료 버튼을 누른다. 전화기 꺼지는 소리가 두 대에서 연이어 울린다. 나는 다시 쿠션에 기댄다. 전화기의 시간은 5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 버리고 집전화는 제자리에 갖다 둔다.

   이 정도 했으면 동기 부여는 충분하다. 이제 재미있는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마감은 금요일 열 두시까지. 꼭 오전 열 두시까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그것이 나와의 약속일지라도.


일이 있는 날은 다섯 시에 기상, 그렇지 않은 날은 일곱 시.

이렇게 살아온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기억이 알람처럼 정교하게 잠을 깨우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깊은 잠에 빠질 새벽에는 한 시간 정도의 구간마다 잠을 깨는 한편, 잠을 깨어야 할 아침 무렵에는 10분 단위로 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못해 알 수가 없다. 잠으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잠에 드는 시간은 규칙적이지 않다. 주로 내가 잠이 드는 방법은 몸에서 "어서 자도록 해"라고 말해주는 순간 침대로 가서 엎어지는 것인데, 그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퇴근해서 돌아온 뒤 컴퓨터를 켜고 잡다한 일을 본 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글을 읽거나 아니면 주말에 읽으려고 사 둔 책을 펼치곤 하는데 그 내용의 몰입도에 따라 몸의 신호가 오는 시간이 바뀌는 것이다.

잠드는 시간도 정확하게 정하면 어떨까? 일이 있는 날은 밤 열 시, 아닌 날은 밤 열두 시. 물론 그 다음 날에 일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정한다면 하루의 의미는 얼마나 나에게 남아 있게 될까? 다섯 시에 일어나서 열 시에 잔 날들.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하루의 의미는 무엇인가. 차라리 '허삼관매혈기를 읽고 한 대목에서 눈물을 찔끔 흘린 날'이나 '조카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기분이 좋아서 사진으로 남긴 날' 이런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다섯 시에 일어나서 열시에 잔 날이라니. 뭐 그따위 인생이 있다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부서진 화분도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있어.

살아가는 것은 기술의 문제야. '망가져 버린 인생'이라는 통속적인 클리셰에 묻혀 있을 필요가 없어. 그저 기술적으로 살아 나가면 되는 것이지. 어차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야.



2015. 7. 30

한숨처럼 더운 선풍기 바람과 딩딩거리는 이름모를 노래가 뒤섞여 내 눈 앞의 창문 모서리를 푸른 공기로 채운다. 이런 공기는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애써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으레 이 뒤죽박죽으로 인해 좌절하고 만다. 며칠째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딩딩거리는 노래는 아까부터 계속 딩딩거리기만 한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글을 쓰자면 그래도 쓸 수는 있으리라.

어제 꿈에서 본 큰 말벌이 머릿속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다. 쏘지도 못할 커다란 독침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꿈의 가장자리까지 달려나갔는데, 잠에 깨고 나서도 나는 달려나갈 것처럼 발꿈치에 힘을 주고 있었다. 해몽 사이트를 확인하니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심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한참 전부터 나는 내 꿈이 나에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감은 교과서처럼 정확하지만 지침처럼 구체적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꿈은 전부 다 맞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옳은 길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꿈으로 인해 나는 운명론자가 되었다.


2015. 7. 31

이번에는 해고당하는 꿈을 꾸었다. 해몽 사이트에서는 길몽이라고 하는데 나는 영 마뜩치가 않다. 꿈이라는 것은 어찌나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실은 맞는 방향이기를 바라는 모자란 나의 희망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은 나약하다. 꿈보다 더 꿈같은 현실 속에서 품은 생각 그대로 살아가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1. 보너스볼은 이어 쓰기가 조금 어렵다. 그야말로 "보너스볼을 맞추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글이었는데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시놉시스는 어느 정도 짜 두었는데 사실 지금은 다 잊었다. 무책임한 발언이나마 끝맺음을 위해 남겨놓는 것이 낫다고 여겨 덧붙인다.
2. 시식코너 이야기는 사실 그게 끝이다. 일주일 뒤에 공개한다는 건 개소리라는 얘기다.
3. 샤워 후 물을 덜 닦고 마룻바닥을 밟는 듯한 찝찝함으로 쓰는 글이다. 혼자 사는 블로그에 물로 발자국이 아니라 노아의 대홍수를 만든대도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그래도 흘린 물을 닦아내는 기분으로 갈무리해 본다.

모든 것을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어제 너의 충고는 새겨 듣곘다. 누군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가 바쁘다는 것 외에는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지하지 않았던 것이지.

김영만 선생님이 우리를 코딱지라고 부르면서 "너희는 잘 하고 있다"라고 격려해 줄 때 눈물이 나는 까닭은 아직 어린 시절의 나에서 한 발짝 이상 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곳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를 바라보며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것과, 내가 언젠가 '어른' -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니라 - 이 된다면 나도 내 뒤를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줄 만큼 자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라야 한다는 말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죽음에 대해 진지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삶의 끝이 내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명이 다 하는 날에 찾아온다는 것도 믿은 적이 없다. 아니, 그 둘은 명(命)이라는 같은 돌림자를 쓰는 형제다.

바쁘다는 핑계는 미안했다. 내 명이 다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명이라면 바쁘다는 핑계는 크나큰 배덕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어른'으로 자라야 하는 나는 결코 어디에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부끄러운 친구를 둔 네게 미안하다.

되돌아보니 취미삼아 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도 벌써 2년 가량 지났네요.

어디에 내놓기 부끄럽고 부족한 글씨지만 그래도 나름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있습니다.

이제는 취미를 넘어 좀 더 책임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 새로운 블로그로 이전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벽벽월드는 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성격이 좀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캘리도 내면의 이야기로 쓸 수 있지만, 저는 제 캘리그라피를 좀 더 표면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결론은 옮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습작으로 둔 것들은 그대로 둘 것입니다. 굳이 가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새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baeks_calli 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꿈을 이룬 사람도 불행하다. 그래서 누군가 불가능한 꿈을 가지라고 말했다. 큰 꿈을 담을 창의력이 없는 나를 한탄한다. 오늘 밤에도 꿈을 꾸고, 중간에 일어나 꿈해몽을 한 번 보고, 그 참에 시계를 보고 남은 잘 시간을 계산하고 아침에 졸음은 그대로인 채로 일어나 또다시 아침을 맞게 될 것이다. 오늘 꿈은 블록버스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머리맡에 꿈을 몇 줄 적어 놓았는데 이루고 나면 불행해질 것이 분명하므로, 나는 꿈의 달성을 얼마 정도 유예하기로 한다. 뿌듯하다. 나는 꿈을 가지고도 이루지 못한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의 기억 용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항상 할 일은 메모해 두어야 한다. 문제는 메모의 양이 너무 많아지다보니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일이 비중을 갖고 메모에 잔존해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인데 이는 메모를 항상 관리하고 수정해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메모 자체가 일이 되어버려 할 일을 정리하는데만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메모에서 스케줄러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일단 바인더를 구매하기는 했는데 사용하는데는 실패를 했다. 포스트잇에 메모하고 정리해 넣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적어넣고 계속 수정하는 내 성격에 가장 잘 맞는다는 점이다. 한 포스트에 적힌 스케줄을 다 완료하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게 안정감과 뿌듯함을 주는 것도 장점이라 할 만하다. 단점은 완료한 스케줄이 쓰레기통으로 가는 통에 기록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못한다는 것인데 이는 포스트잇을 모으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포스트잇 저장 스타일의 스케줄러를 찾는 것이 단기적 목표다. 바인더가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쉽다.

'한글자'까지에서 '한'과 '글' 사이가 너무 좁은 것 말고는 마음에 든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앞니와 잇몸의 국경 한 지점에 빨간 점이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편의상 이 점을 고춧가루 분쟁 지역이라고 칭해 보자. 우리는 싸움이 붙기 전에 화를 잘 조절해서 싸움이 안 나도록 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평화주의의 원칙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전에는 고춧가루가 든 식사는 피하도록 하자. 이 분쟁은 정의로운 칫솔부대를 투입하여 강제 진압하였으나 평화롭지 못한 해결방식에 입맛이 자못 씁쓸하다. 역사에 이 날을 통한의 날로 기록해둘 일이다.

며칠째 마시지 않은 아사히 수퍼드라이 삼백 오십 밀리 캔이 책상 위에서 날 노려보고 있다. "어째서 날 마시지 않는 거야? 취하고 싶지 않아? 그러려고 날 산 거잖아. 어서 마시라구. 아니 마시지 않을 거라면 냉장고에라도 넣어 주지 그래. 이래서는 마시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는 게 당연해지잖아." 나는 눈싸움에서 질 생각은 없었다. 어째 가운데 날 생자가 더 납작해지는 느낌이다. 

마시지 않은 취기를 예금하기라도 하듯 나는 그를 좀 더 내버려 두기로 한다. 밤마다 피곤이 이자처럼 불어나므로 나는 눈을 서둘러 닫고 그 날의 필요한 취기와 피곤을 정산해서 꿈의 주인에게 결재를 받는다. 아사히는 내일 오전에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아픔에 대해 다룰 때는 김훈처럼 건조한 문체가 좋다. 그가 성행위나 생리 현상을 묘사할 때의 담담한 글의 각도는 비릿함과 뜨거움을 좀 더 강하게 느끼게 해 준다. <흑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장 4시간에 걸쳐 읽었다. 피곤에 몰려서 읽느라 묘사를 놓친 것이 많았다. 한장 띄엄띄엄 읽자니 내러티브는 자연히 머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기억나는 것이 없다. 어차피 내게 책을 읽는 행위는 빈 시간을 이리 씹고 돌려 씹는 그 담담함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내용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요즘 세간 식으로 평을 하자면, 김훈은 점점 자기복제의 장인이 되어 가는 것 같고, 주인공은 돌려쓰기하는 것 같다.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같다. 주인공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고고한 방관자. 고전적인 타입.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있음을 깨달았다.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책 제목이 선정적이고, 괜찮다는 평이 있어 읽어본 책에서 건진 단 하나의 문장. 내용은 진부하지만 작가의 삶의 태도로는 느끼는 바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사실만으로 가슴이 눌려온다. 그 누름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으며 그 사실만이 마음을 잡아당겨 어떠한 길로 끌어간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다만 그 여정에서 옆과 뒤를 돌아다보면 많은 것들이 지나가 있고, 지나가고 있으며 어느 순간과 어느 지점마다 놓여있는 내 발걸음들이 다른 발걸음들 사이에서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빛으로 뿌옇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언젠가 무늬를 이루고 얼개로 짜여 삶이라는 거대한 그림이 되어가는 것을 언젠간 알리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깎는데, 어제인가 예약을 하려니 그만두셨단다. 꽤 오래 머리를 맡겨서 편해졌는데 이렇게 떠나니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내 개인의 사정 같기도 하다.

자주 외식을 대신하던 가게가 어느 날 리모델링 중이더라. 그 때 느낀 상실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머니는 이 날 눈물이 나올 뻔 하셨다고 한다. 나 또한 잠시였지만 갑작스러움에 인생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쉽게 변하니 마음도 주지 말고 흘러가는대로 살아야 한다는데, 정작 타인의 작은 흘러감 하나하나에 수많은 감정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을 보면 해탈의 경지란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구도의 길이 얼마나 고로 가득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서둘러 뜨거워진 알갱이를 길게 비틀어내렸다. 신맛이 비명처럼 뜨겁다. 흘린 눈물의 양만큼 마셔야지. 한 번 끓여낸 환희가 내 목젖을 검게그을렸다. 이제 그걸 비틀어내릴 차례다. 에스프레소처럼 단순하다.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헌책방에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나를 잊어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의 도시에서도 청계천에서도 노량진에서도 그러했다. 이틀을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조치원으로,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그리고 한 숨 자고 영동을 건너 구미로, 구미에서 대구까지 갔는데 그 마지막도 중앙로에 있는 서점이었다. 서점에 도착하니 비로소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것도 고백해야겠다. 계속 쓰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몇 년을 참다 보니 65킬로그램이던 내 배가 십 킬로그램이 늘어났다. 책 한 권이 500그램이라고 하면 이십 권의 전집이다. 난 작가라는 걸 꿈이라고 생각하기 훨씬 예전부터 이미 이십 권의 전집을 뱃속에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연수의 말을 빌리자면 '불현듯 내 전생이 살짝 엿보였다.' 난 전생에 말은 엄청 많지만 작품은 별 볼일이 없는 무명 작가였다. 업으로 치자면 스무 권은 써야 하는데 말이 많다보니 글로 쓰질 못했다. 그런 까닭에 염라대왕이 그 책을 지고 현생에 태어나라 했던 것이다. 그걸 지고 외국의 도시를, 청계천을, 노량진을, 대구를 그렇게 돌아다녔으니 자못형벌이다.

환상은 유치하기 쉽다. 현실을 다룰 때보다 더욱 예민해야 한다. 환상을 이야기하는 성공한 작가들의 이름값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끔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의심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모모>를 읽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였다. 너무나 유명했으니까.(얼마나 유명한지는 맨 아래의 신문광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모>는 유치하지는 않다. 동화적인 상상력이 선을 넘지 않으면서 현실을 툭툭 건드리곤 한다. <모모>의 입장에서 내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모모>는 재미있다.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힐링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환상 속에서나 답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그러했으니까.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 나도 <모모>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물론 그것이 핑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은 어렵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정말 시간이 없는 것이 맞는가. 시간이 없다는 것은 일종의 나의 모자람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과감히 패스하도록 하겠다.

모모는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제가 기억하기론 저는 언제나 있었던 것 같아요." (16쪽)

...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23쪽)

감동적인 모모의 일갈 <사이비는 가라!>

   그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놀랐던 것은 나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뿐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마침 그 때 카톡을 열고 프로필 사진을 몽블랑의 만년필의 스타워커 어반 스피드 사진으로 바꾸고 있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전부 '만년필이 무척 갖고 싶은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될 터였다. 그 와중에 그들이 연락을 해오다니, 나로서는 놀라 나자빠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능력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문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놀란 까닭이기도 하고. 어릴 때, 기가 막히게 백텀블링을 잘했다던가, 남들보다 숫자를 먼저 깨쳐서 엄마를 놀라게 했다거나 하는 능력이었다면 아마 놀라지 않았겠지만, 그런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영역의 능력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처럼 내성적인 성격의 왕따 소년이 갑자기 거미에 물려서 슈퍼히어로가 되는 그런 경천동지할 능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상당히 평범한 학생이었고, 친구도 제법 많았으며, 변성기도 제 때 찾아왔고, 중2 때부터 시작한 사춘기는 고3때까지 두 명의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었으며, 제 때 공부를 하지 못해 고3 막바지에 열을 낸 수험생 생활은 가까스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뿐이다. 그 사이에 하다못해 거미줄은 아니어도 5미터만이라도 날아갈 초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아둥바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톡 메세지는 달랑 한 개뿐이었는데 끝에 '..'이 찍혀 있는 바람에 내용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었으면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 메세지를 읽은 것을 그들이 알 것이리라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꾸를 할 생각은 없었다. 간첩 접선 메세지를 위장한 보이스피싱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

   스타워커 어반 스피드 만년필 끝에는 루테늄 합금으로 된 펜촉이 달려 있다. 그게 뭐가 중요하느냐고? 루테늄의 원소 번호가 44번이기 때문이다. 44번이 중요한 이유는 그게 44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꿈에서 숫자가 보인 것은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폐렴이었는지 신종플루였는지, 아니면 다른 병이었는지, 아무튼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를 망쳤을 때 무렵이었으니까 한 5년 되었나 보다. 한참 아프고 난 뒤 독한 약에 취해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숫자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숫자가 1번이었던가 그랬다.

   꿈에 숫자가 나타나는 건 드문 일이지만 숫자가 단 한 개 뿐이었길래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숫자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꿈은 부정확하고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1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1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다만 잠에서 깨고 난 뒤에 1이라는 이미지가 머리속을 둥둥 떠다니기는 했다.

   "뭔놈의 로또를 또 샀대요?"

   토요일 아침,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아침 댓바람부터 볼멘소리를 하는 걸 보니 지난 밤에 로또 용지를 지갑에 넣고 들어오셨다가 걸린 모양이다. 제법 취한 목소리더니 간수하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아 거 좀 살 수도 있지 되게 그러네. 한 장 샀어. 한 장 샀다고."

   "한 장? 한 장 말 잘했소. 종이짝 한 장에 오천 원씩이나 하는 걸 술김에 산 게 참 자랑이우 자랑이야. 지난 번에 안한다고 했소 안했소?"

   "미안하니까 고만 좀 해. 이거까지만 맞춰 보고 더 이상 안 맞춰볼 거니까."

   그 날, 로또를 맞춰 보면서 보너스볼 번호가 1번이었다는 건 따로 덧붙이지 않는다. 나는 그걸 우연이라고만 생각했고, 아니, 아예 그 두 개의 번호가 같다는 걸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적어도 그 다음 주의 방송을 보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내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꿈에서 다음 로또 보너스볼 번호를 맞추는 능력.

   이 얼마나 위대하고도 하찮은 능력인가 말이다.

   로또 보너스볼로 인터넷 검색하면, '숫자 2개하고 보너스볼을 맞췄는데 5천 원 받으러 갈 수 있어요?'라는 글이 올라와 있고 그 글에 대한 베스트 댓글은 '이분 최소 오늘 로또 처음 사신 분'이라는 비아냥이다. 로또 보너스볼 따위를 맞춰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카톡을 받은 지 사흘이 넘어가고 있다. 답장은 여전히 하지 않았다. 그 쪽에서도 별다른 메세지를 보내지는 않고 있다.

   TV에서는 로또 추첨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로또 방송을 보기 싫어해서 이맘때는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가고 만다. 아버지는 눈치를 챈 건지 못 챈 척을 하는 건지 아무 생각없이 손에 쥔 로또 용지와 방송을 연신 번갈아 보며 행운을 기다리는 중이다. 힐끗 종이를 보니 44번이 적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2등에선 멀어지셨어요.'

   뭐 항상 그 능력이 내게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이러다가 틀릴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우연의 일치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나 스스로도 별달리 그 능력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써먹을 데가 있어야 아쉬운 마음도 들 게 아닌가.

   "오늘의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3, 9, 19, 20, 34, 43입니다."

  이미 첫 번째 숫자부터 아버지의 인상이 구겨졌으니 더는 볼 것이 없다. 1등도 아니고 2등도 아니면 인생대박은 이미 물 건너 간 일이 아닌가 말이다.

   "보너스번호는 44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카톡 프로필의 만년필 사진은 지워야겠다.

   나는 그 사진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너희들 테트리스 알아? 누군가 테트리스 노래를 작게 흥얼거렸고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테트리스 해보면 알겠지만 우리 인생과 완전 판박이더란 말이야. 작대기 그놈, 아무리 열심히 쌓아봐야 작대기 그거 하나 안 나와서 게임오버 되고 나면 얼마나 열이 받아. 미치겠지. 지금쯤 나와 줘야 하는데 꼭 목끝까지 다 쌓고 죽을때쯤 되면 나와. 세우자마자 목젖을 찔러 꽥. 꽥 소리가 실감이 났던지 헛기침 소리가 났다. 선배, 하지만 작대기 잘 나와요. 제가 어제도 했거든요. 끼어드는 목소리에 농과 증이 동시에 묻어 있다. 술자리의 때아닌 장광설에 질려 있던 사람들의 지어낸 웃음이 말을 끊는다. 작대기 잘 나와? 이상하네. 우리 전부 작대기가 없어서 이 자리 있는거 아니었어? 이 안주세트 하나에 소주 한 병 만원 세트가 작대기들이 드실 안주신가? 에이 선배 갑자기 화를 내요. 화 안 나게 생겼어. 작대기들, 아예 작대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네 줄씩 뽑아 먹는 비양심들 때문에 스펙을 산처럼 쌓아놓고 목숨이 경각에 닿아 있는 우리들이 화를 안 내니 요 모양 요 꼴 아니냐. 늬들도 정신 차려. 02학번 승준이는 아예 버튼 하나가 작대기 소환 버튼이라더라. 아 그 친구? 그끄저께 지나가면서 보니 신차 뽑았다고 신관 주차장에 떡하니 세워뒀던데. 누군가 거들어주었다. 살면서 작대기 하나 있으면 그만이지 우는 소리 그만하세요. 하나뿐이지만 제법 쓸만하다구요. 막혔던 폭소가 울음보처럼 쏟아져나온다. 그래 그 작대기 하나로 잘 살아봐라. 그새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 우물거려 보지만 이미 대화의 테트리스는 게임오버가 오래 전이었다. 끝.

1.

"아직 덜 구웠어요?"

날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딜가나 큰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지금 한창인 이 실랑이는 조금 특이했다. 여느 대형마트에서든 볼 수 있는 육류코너의 한 시식코너에서 젊은 남자와 여자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직 익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젊은 여자는 앞치마에 유니폼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직원인 듯하고, 남자는 표정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손님이었다. 익지 않은 고기를 내놓을 수는 없을 테니 남자의 성화가 정당한 것으로 보이긴 어려웠으나, 여자의 태도에는 그런 사정도 뛰어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까지마저 느껴졌다.

다행히도 남자는 여자의 그러한 태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불판 위에서 점점 갈색으로 변해 가는 빨간 살점에만 목적이 있다는 듯 여자 쪽은 별로 바라보지도 않은 채 두 개의 이쑤시개를 포크처럼 겹쳐 쥐고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져주랴, 고기를 구우랴, 지나가는 고객에게 호객 행위를 하랴 무척이나 분주했다.

"다 익었네요. 안 보이세요? 빨리 자르기나 하세요."

남자의 재촉이다. 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옆에 놓인 소금병을 보란 듯이 탁탁 털어 고기에 뿌렸다.

"소금을 뭐 그리 많이 쳐요. 짜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확실히 이 말은 효과가 좋았다.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랑을 느꼈다거나 하는 류의 긍정적인 시선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 익은 고기가 한점 한점 잘라지고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 분명 조금 머뭇거렸다.- 자른 고기를 시식대의 한 켠에 놓인 접시로 옮겨 담았다. 남자의 이쑤시개가 금세 고깃점에 와서 박힌 것은 굳이 어려운 추측이 아니어도 알 만한 일이었다.

'아저씨. 다 드셨으면 얼른 가세요.'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는 고깃점들이 다른 고객의 입 안은 구경조차 못한 채, 아까부터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던 사바나의 왕처럼 기세등등한 남자의 입으로 오열종대를 갖추어 들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

남자가 시식 코너에 출근을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정확히 출근 일주일이 된 날 여자는 담당 대리에게 보고를 했다.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사람도 손님이니 내쫓을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 사람더러 시식코너를 독점하지 말란 말을 직접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되묻는 대리에게 여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니가 알아서 할 일을 무엇하러 보고까지 해서 성가시게 하냐'는 뜻이다. 알고도 보고를 한 것은 그것이 자주 있는 일임에도 늘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을 훌쩍 넘어 한 달이 가까워지자 여자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 그 친구, 파란색 야상에 추리닝 입고 다니는?"

스파게티 시식을 맡고 있는 언니는 그 남자에 대해 말을 꺼내자마자 누군지 단번에 알아채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 사람, 스파게티로 한 한 달인가를 배를 채우더라고. 개근상 줄 뻔 헀다니까? 나중에는 정이 들어서 소주잔이 아니라 큰 종이컵에 꽉꽉 눌러담아 줬더니만"

그 말에 다른 언니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여자의 질문에 언니는 고개를 한번 으쓱하더니 "낸들 알아?"하며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넌지시 알렸을 뿐이었다. 이 해와 저 해를 넘나들며 정다운 인생사 이야기를 나누느라 별것 아닌 시식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3.

"고기 바싹 익혀야죠. 돼지고기는 날것으로 못 먹는 거 아시잖아요."

28일째 되던 날, 남자의 잔소리가 또 다시 여자의 고막을 관통했다. 여자의 표정이 가관이다. 억지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는 여전히 이쑤시개를 양 손에 나눠 들고 금세라도 익은 고기를 공격할 태세다. 손님들도 주변에 한두 명씩 기다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프로 시식꾼이 옆에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기자로 살아가는 슈퍼맨처럼, 그 역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함이 빛을 발하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다 익었으면 빨리 자르기나 하시죠. 다른 분들 기다리시겠네."

여자는 이상한 기대감에 이 모든 잔소리를 참아내고 있었다. 28일째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제 인터넷에서 찾아서 조그맣게 출력한 개근상 상장을 부적처럼 지갑에 넣어놓고 있었다. '개근상 줄 뻔 했다니까?'라던 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울렸다.

그녀의 손을 떠난 고깃점들이 다른 손님들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입속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손님들이 불쾌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입으로 꺼내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4.

31일째가 되자, 그녀는 출근길이 다른 날보다 가벼움을 느꼈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먼저 출근해서 준비를 마쳤다.

'과연 그 남자가 또 올까?'

안 올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대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결과는 일주일 뒤에 공개됩니다.

http://global.donga.com/View?no=2106


기도를 몇 번이나 했는데 연결이 안 되었나 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하느님.

어제는 뒷집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먼저 갔어요.
혹시 만나 보셨나요? 글쎄, 불법주차 단속에 걸려서는
돈이나 좀 쥐어줄 요량으로 주머니를 뒤지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았대요.

아마도 못 들으셨겠죠.
만물의 아버지이신 주님께서도 가끔 놓치시는 게 있겠죠.
그래, 저 만나러 가려고요.
주님 계시는 저 하늘 어딘가로 지금 당장요.

설령 길을 잘못 들어서
어디서 저 눈 감은 얼굴 다른 이들이 본다 하여도,
그때 이미 주님께 이 세상 이야기 드리고 났을 터이니,
그 얼굴에 웃음꽃 피어 있겠죠?

아, 그리고 주님, 이 세상에 와이파이 빵빵 터지게 해 주세요.
모든 백성 기도 다 들으실 수 있게 말이에요.
그럴 수 있으시죠?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죠?

-

네이버에서 한때 댓글 시인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을 한 번 따라해 보았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감정이 가파르게 올라가면 또 다시 떨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 역시 보여주고 있다.

"너는 언제나 내 믿음을 이용해. 그리고는 이런 상황에서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들어 버려. 세상에 그 눈.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랬잖아."

난 물끄러미 바라보던 눈을 재빨리 내린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읽으려던 참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순간이 아닌 듯했다. 차라리 내 시선은 죄인의 그것처럼 아래를 향해 있었어야 했다. 불찰이다.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서둘러 끝을 맺었다.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다 내 잘못인걸.'이라는 뒷 소절은 목구멍을 맴돌다 다시 뱃속으로 내려갔다. 문득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 작은 통증이 왼쪽 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런 뜻이 아니면 뭐? 넌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니? 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은 하기 싫은가 보네."

그녀는 앙칼지게 쏘아붙인다. 승리를 확신하는 장군 같았다. 내 왼쪽 가슴을 찌르던 작은 통증이 마치 말발굽으로 두들기는 듯한 아픔으로 변해 간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 무엇인가 설레는 듯한 향기가 서려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잘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그녀는 승리에 기쁨에 잔뜩 취해서는 '뭘 잘못햇는데? 그러니까 잘못한 게 뭔지는 아는 거야? 말도 못할 거면서 쉽게 말하는 걸 보니 그만 끝내고 싶은가보네?' 등등의 세상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마법의 문장들을 쏟아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실은 말야..."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카운터 펀치가 들어간 정도는 아니어도, 쉴새없이 쏟아지던 주먹에 순간 틈이 열린 정도는 되었다.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다 내 잘못이다."

순간 미처 소화하지 못한 아까의 소절을 토해내듯 뱉어내고 말았다. 소화시키지 못한 유구무언이 기세 좋게 쏟아지던 분노의 방향을 흐트리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한번 흐트러진 기세는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워낙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할 수가 없다'는 눈길로 바라보아 봤자, 이미 한풀 꺾인 기세가 쉽사리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더라? 나도 그녀처럼 입이 있어도 말은 할 수가 없다.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곧 없어질 분노의 순간처럼 그 웃음도 아무도 보지 않은채로 내 마음 깊숙히 달아나고 말았다.

살아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짐을 지고 혀를 있는 한껏 빼물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힘겨운 이도 있겠고, 서로 손이며 발이며 잔뜩 움켜쥐고는 아울렁아울렁 깨가 쏟아지는 이도 있겠고, 인심이며 존심이며 있는대로 꺼내서는 모조리 덜어내며 떠나가는 이도 있겠고,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웃으며 울며 그렇게 달아나는 쟁이도 있겠고. 나는 그 중에 무엇이냐. 나는 쟁이이고 싶다. 쟁이라는 것은 천박하다고 손가락질도 받고, 무식하다고 놀림도 받고, 게으르다고 빈둥댄다고 천대도 받지만 사람들이 나를 보며 웃으며 울며 어쩌면 그렇게 말도 잘하냐며 저 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무엇이라고 밉지 않게 눈이라도 흘겨 주었으면 좋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담배를 끊을 예정이다." 그가 금연을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너무나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하마터면 대답을 하지 못할 뻔했다.

다만 그 때 우리는 너무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만을 나무랄 일은 아니었다. 진부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순전히 술이 문제다. 게다가 우리는 안 지도 1년이 안 되는 조금 멋적은 사이였고, 그가 술에 취하면 일방적인 선언을 즐겨 한다는 것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한 관계였다. 여럿이 어울려 술을 마신 적은 많았지만 단둘이 먹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여럿이 술을 마실 때는 자신을 조금 더 숨기기 마련이다.

"담배 그거 끊으려면 끊어. 좋은 것도 아니니까. 잘 생각했어. 너를 위해서나, 애기를 위해서나 말이야."

의례적인 대꾸에는 별 신경도 안 쓰는 듯 그는 눈 앞에 놓인 잔을 비우고 벌써 식어버린 찌개를 떠 먹었다. 빈 병이 두어 병 두서없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미묘한 공기가 어색하게 자리잡았다.

갑작스레 나에게 퇴근시간이 지나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제의한 것은 그였다. 결혼한 지 두 달만에 아이가 생긴 그는 부쩍 피곤해 보였다. 자세하게 알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번 일을 빠졌고, 그 때문에 라인 전체에서도 눈총을 받고 있었다. 가끔 휴식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그의 입술에서 흔들거리는 하얀 딱지가 눈에 거슬리곤 했다. 말투는 예전과 마찬가지였지만 어쩐지 윤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담배 그거 끊어야지."

그는 성의없이 말을 던져놓고 잠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반장 욕을 할 것처럼 입술이 실룩거렸지만 거기까지였다. 무슨 말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나는 내 눈 앞의 술잔을 비우고, 마지막 남은 술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우고 내 잔에 나머지를 따랐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시간을 채우는 요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색한 공기를 걷어치우듯 그는 반장 욕과 늘 나누던 시덥잖은 직장 이야기로 서둘러 돌아왔기 때문이다. 남은 찌개 국물과 몇 병의 소주를 더 마시고 나면 우리는 다시 라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공기가 제 궤도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담배를 끊을 예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나는 계산을 하면서 차라리 그의 얼굴을 한 대 때리면 어떨까를 고민했다. 순간 그의 손에 쥐인 담배를 패대기치고 밟고 부수고 찢어버리는 것을 상상했다. 그건 내일 내 앞에 놓일 단조를 부수는 극적인 한 방일 지 몰랐다. '어느 쪽이든 한동안은 담배를 끊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는 밖에서 기다리다 내 웃음기 있는 얼굴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담배를 끊을 거면 지구를 지켜야 한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유를 다는 것이 낫지 않아?"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글쎄 그것도 좋겠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길로 돌아갔고, 다음날 그의 얼굴에는 하얀 딱지가 범위를 넓혔고, 입술은 바른 약으로 번들거렸다. 또 술을 마시게 되면 그 때는 그를 위해 반장 욕을 더 찰지게 해줘야지 결심을 했다.

배우 김○○이 최근 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미모의 일반인 20대 여성과 열애 중임을 고백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공개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진행된 BBB의 간판 토크쇼 “ㅍㅍㅍㅍ”에서 톱 엠시 이○○의 첫 질문과 재차 이어진 패널들의 질문 공세에 당당히 열애 중임을 밝힌 것. 상대는 중견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20대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동안은 일반인인 것 외에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녹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드라마 촬영 중 연기력 부족을 이유로 많은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으나 그녀의 따뜻한 위로의 말로 재기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며 깊은 사랑을 과시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톱 탤런트가 일반인과 사귀는 것이 놀라워”, “누군지 몰라도 부럽다. 정말 복 받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김○○가 출연하는 BBB 특별기획 "사랑따위 개나 줘버려"는 한때 평균시청률 40%를 넘는 등,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잘 포장한 거짓말이 진실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은 비난할 것이 못 된다. 작가들도 본인이 쓰는 한 줄의 문장이 형편없다는 진실은 바라보고 싶지가 않을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이라도 글을 썼으면 적어도 최저시급보다는 값이 나가기를 바라는 법이니까.

“다포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콜라라도 한 캔 사서 목이나 축일까 하고 들어간 편의점에서 점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들어오면서 점원에게 말을 건넨다.

“다 포기했다고 다포자래. 삼포 오포는 들어봤어도 다포자는 처음 듣네”

시덥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뭘 그리 껄껄 웃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점원의 얼굴은 바라보지 않는다. 많이 쳐도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다포자라는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야 둘 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니 별 내색은 하지 않는다. 어쩐지 속이 불편해져 콜라는 사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점주는 나가는 나를 멀뚱히 보고만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천 원의 예상된 매출을 없던 것으로 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신도림 당역종착
연결음

참 멋진 멜로디

지금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플로피 룩(Floppy look) 달빛과
두랄루민 그림자

One Fine day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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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시(2006-11-05),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히려 감성은 그때가 나은 듯. 다만 2행의 "참 멋진 멜로디"는 직설적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감정을 감추어냈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예 지워도 좋겠다. 그렇게 따지만 마지막 연도 별로...

요즘 멀리 돌아가고 있다. 언제나 내가 가야 할 길은 길고 험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비해 한없이 약하다. 목표 없이 걸어가는 것은 즐겁다. 조금 늦더라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러다보니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잠시 쉬는 것도 괜찮다. 분명 나는 다시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언젠가 말했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마루야마 겐지는 "재능이란 서너 개 부족한 것이다. 그 결핍을 메우려는 분투에서 무언가가 나온다."라고 했다. 맞다. 내가 알고 있는 재능의 의미와 완전히 같다. 재능은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다. 나중에 돌아보아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다만, 나에게는 없을 뿐이다.